사진의 기술
8일째 아침, 나는 라일레이 섬에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아침 산책을 했다.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혼자서 원숭이가 어슬렁거리는 깜깜한 길을 내려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날이 밝아오는 걸 확인하고서야 서둘러 해변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동쪽 선창장 쪽으로 이제 막 떠오른 해가 보였다. 필름 카메라를 꺼내 뷰파인더로 해가 비치는 선착장을 들여다보았다. 붉은 해가 비치는 선착장은 하루의 시작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셔터를 누를까? 말까?' 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했다. 필름사진을 찍으며 셔터를 누를지 말지는 늘 고민해 왔지만 예전과 같은 고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름 한 롤의 가격이 너무 비싸진 탓이었다.
아침 산책의 목적지는 프라낭 동굴이 있는 프라낭 해변이었다. 구글맵 리뷰에서 누군가는 석회암 절벽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 프라낭 해변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했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에는 낙원이 꽤나 많은 듯하다. 이른 아침 지상 낙원을 산책하러 가는 길은 꽤나 으스스했다. 동쪽 선착장에서 프라낭 해변으로 가기 위해서는 석회암 절벽과 리조트의 벽 사이로 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고개를 들면 떨어질 것 같은 종유석들이 동굴 안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심술궂은 원숭이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들고 있던 카메라는 가방에 넣고 핸드폰은 손에 단단히 쥐었다.
아침 7시에 도착한 프라낭비치에는 나뿐이었다. 11시만 되어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고 들었는데 아무도 없는 프라낭 비치라니! '부지런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프라낭비치를 밟는다.'라는 명언을 머릿속으로 만들며 혼자 웃었다. 카메라를 꺼내 필름에 부지런히 지상낙원의 풍경을 담았다. 하지만 셔터를 누를 때마다 고민은 계속되었다. 좋을 사진을 찍기 위한 고민이 아닌 필름을 아끼기 위한 고민이었다. ‘이 장면은 필름에 담아야 할까 아니면 그냥 핸드폰으로 찍어도 될까?‘ 궁색한 고민이었다.
20년 가까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으로 책을 만들기도 하고 전시도 하면서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는데 이제는 20년 전에 비해 6배 이상 오른 필름 값에 후덜 거리며 필름에 담을 장면과 핸드폰에 담을 장면을 고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 걸까?'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까?’
변함없이 품고 있는 질문에 하나의 질문이 추가되었다. ‘필름으로 찍어야 할까? 핸드폰으로 찍어야 할까?’ 눈앞에 장면이 작품이 될지 단순한 기록이 될지는 알 수 없는터라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궁색하게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필름 사진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생기는 시절이지만, ‘필름 사진만큼은 지속하고 싶다!’고 느낌표 찍어본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행자 한 분이 해변으로 걸어오셨다. 조용한 아침 해변을 카메라에 담으며 홀로 산책하는 여행자라 괜히 더 반가웠다. 가까이 걸어온 그에게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말을 걸었다. 혼자 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사진을 남기기가 어려운 걸 알기에 오지랖을 부려봤다. 그의 DSLR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 드리니 좋아하시며 내 사진도 찍어준다 하셨다. 나는 필름 카메라가 아닌 핸드폰을 그에게 넘겨주고 포즈를 잡았다. 필름은 아껴서 찍어야 하니까.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