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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Aug 23. 2023

17. 최악의 숙소

자연친화적인 숙소에 적응하는 기술

소울일기 | 코리페 첫째 날

나는 오늘 침대가 편한 숙소에서 일어나서 짐 싸고 나와서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무지개맛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솜사탕맛이 났다. 그리고 배를 기다리다가 배를 타러 선착장에 갔는데 배가 엄청 작아서 놀랐다. 그러다가 조금 큰 배로 갈아탔는데 생각해 보면 작은 배가 더 좋은 것 같다. 이유는 배 모터에서 나는 소음이 상상 이상으로 컸기 때문이다. 표현하자면 일렉기타를 엠프 끼고 4시간 동안 틀어 놓은 느낌?! 그리고 귀가 터지기 전에 코리페에 도착했다. 코리페 숙소는 처참했다. 그린뷰라는데 너무 힘들다. 코리페는 전경만 멋지고 별로다.


  코리페의 숙소는 아름답고 처참했다.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곳이 숙소의 로비였고, 열대 지방의 꽃과 나무로 잘 가꿔진 정원 안에 그림처럼 위치한 방갈로가 우리가 6일 동안 머물 집이었다. 방갈로 입구에는 삼각쿠션이 놓여 있는 툇마루가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았다. 대나무로 지어진 작은 방갈로 안에는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침대와 모기장 그리고 더위를 식혀 줄 선풍기가 전부였다. NO 에어컨, NO 티브이, NO 냉장고, NO 드라이기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인 숙소였고 있어야 할 것만 있는 군더더기 없는 방갈로였다. 방갈로 안에 다행히 화장실이 있었지만 어둑한 조명 탓인지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탓인지 아이들은 혼자서 화장실 가는 것을 꺼려했다. 대나무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와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모기와 각종 벌레들도 이 틈으로 드나들 것 같았다. 역시나 대나무로 만들어진 방바닥은 울퉁불퉁했고 그 때문에 요철에 발바닥이 찔려 잠깐씩 고통스러웠다. 너무 아름다운 방갈로인데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최악의 숙소라며 하루도 못 있겠다고 툴툴거렸다.


'우리, 6일이나 머물러야 하는데 괜찮을까?' 나는 숙소의 불편함보다 아이들의 불만을 6일 동안 견딜 자신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변화를 보고 싶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온 여행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떠나온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맛을 경험하며 새로운 세계를 배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뀌기도 하고 나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적응력에 놀라기도 한다. 여행은 그렇다. 여행을 통해 생각이 바뀌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내가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던 여행도 그런 여행이었다. 어쩌면 아름답지만 불편한 숙소에서 6일 동안 머무는 일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했다. 도착 첫날은 긴 이동으로 인한 피곤함으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오레오~"라고 우는 새소리에 잠을 깼다. 자연친화적인 방갈로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알람소리로 새소리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방갈로 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오니 풀 냄새와 바다 냄새가 한꺼번에 맡아졌다. 남쪽 끝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느슨하게 맞이할 생각으로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숙소를 바꾸기엔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환불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숙박비로 더 이상의 지출을 하는 것보다 불편함에 적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은 5박 6일 동안 이곳에 머물며 아름답고 불편한 방갈로에 천천히 적응해 갔다. 바다가 보이는 공용 공간에서 멍 때리기도 하고 일기도 쓰고 스트레칭도 하고 그러다 바다로 뛰어들어가 스노클링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운이 좋으면 무지개 물고기를 볼 수 도 있었다. 어떤 날 오후에는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져 모기향을 피워 둔 툇마루에 앉아 한참 동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선풍기는 낮 동안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했고 모기장이 둘러진 침대는 안전한 요새가 되어주었다. 다른 방갈로의 여행객들이 퇴실하자 직원들이 침대 매트리스를 꺼내 햇볕에 말리며 소독하는 걸 보니 더욱 뽀송한 요새인 것처럼 느껴졌다. 최악의 호텔이라고 말하던 아이들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린뷰리조트(greenview resort)가 최고의 호텔이었다고 회상했다. 역시 여행은 해봐야 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ngBRXPpik1/?igshid=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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