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자신감을 발휘하는 기술
코리페 섬에는 3개의 큰 해변이 있다. 배들이 오고 가는 파타야 해변, 해가 뜨는 것을 직관할 수 있는 선라이즈 해변, 해가 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선셋해변이 코리페 섬의 대표적인 해변이다. 이 섬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 아름답기로 소문난 선라이즈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이 해변이나 저 해변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굳이 섬 반대편까지 가느냐고 투덜거렸다. 새벽에 선라이즈 해변에서 해 뜨는 걸 보고 왔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너희들이랑 낮에 다시 가고 싶다고 둥글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둥글게 말하면 아이들의 반응도 둥글둥글해진다.
여행 가이드이자 엄마인 나는 해수욕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겼다. 비치타월, 스노클링 물안경,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구명조끼, 오리발, 선크림, 태닝오일, 모자, 선글라스, 읽을 책, 고프로(수중카메라), 카메라, 물, 그리고 수영복은 비니키 수영복으로 입었다. 비키니는 여름나라에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의 기술을 연마할 비장의 준비물이었다. 이 섬에서만큼은 비키니 위에 샤롱 하나만 두르고 얼마든지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서양 여행객들이 헐벗은 몸으로 해변과 거리를 누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체형의 소유자이든 상관없었다. 단지 개인의 취향이 반영될 뿐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넘기면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잘 살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새벽 수영을 하고, 11자 복근을 만들어 보겠다고 홈트도 하고,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주말마다 등산을 했다. 운동을 하다 보니 체력이 오른 건 물론이거니와 어느 정도 비키니를 입을 수 있는 몸이 만들어졌다. 운동의 장점이다. 태국에 와서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도 있지만 비키니를 꺼내 입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건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몸에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뭐 어때? 이게 나인걸!' 하고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흔을 넘긴 사람의 미덕이다. 그리고 적당한 타협은 정신건강에 이롭다. '운동을 꾸준히 해서 나이가 들어도 자신감 있게 비키니를 입는 할머니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낮에 온 선라이즈 해변은 이제껏 살면서 본 바다 중에 단연코 최고로 눈부신 바다였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무라카미류의 책 제목이 생각나는 그런 바다색이었다. 몰디브를 안 가봤지만 몰디브 이상으로 푸르게 빛나는 바다색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내 몸이 투명하게 물들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고, 누구라도 바닷물에 오줌을 누면 티가 날 것만 같았다. 둘째 아이가 급하게 신호가 와서 바다로 들어갔지만 다행히 티는 나지 않았다. "엄마! 바다가 미쳤어요!" 좀처럼 흥분을 하지 않는 첫째 아이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놀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우리는 투명한 바다로 헤엄쳐 들어갔다. 물고기처럼 살랑살랑 바닷속을 산책하며 보이는 물고기마다 인사를 나눴다.
"안녕!"
바닷속 산책을 마친 아이들은 모래를 파는 일에 열중했다. '적당히'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듯 지구 반대편까지 팔 기세로 모래를 파고 있었다. 왜 모래를 파고 있는 건지 본인들도 알 수 없는 단순한 열정. 사내아이들의 놀이방식이다. 나는 그들의 놀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선베드에 누워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 모드로 그저 지켜만 보았다. 사내아이들과 놀 때에는 체력이 방전되지 않게 에너지를 잘 나눠 써야 한다. 아이들은 모래 구덩이를 자신의 키만큼이나 파고서야 멈추었다. 다시 모래 구덩이를 메꾸며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영락없는 사내 녀석들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