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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Aug 29. 2023

20. 공을 쫒는 모험

심심함을 달래는 기술

 집을 떠나온 지 12일째,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곳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고 아이들과 자주 이야기했다. 불편한 방갈로, 매일 사 먹는 버블티, 코코넛 빵 파는 아저씨의 리드미컬하고 중독적인 노래, 파아란 바다, 루미큐브, 섬에서 한가롭게 혹은 지루하게 보내는 코리페에서의 시간이 오래오래 기억날 것 같았다. 한가로운 섬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오늘은 뭐 하고 놀까?'였다. 뭐 하고 놀지 생각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하루라니 마치 '톰소여의 모험'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오늘의 모험은 잃어버린 공을 찾아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간 일이었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고,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전날 새로 산 고무공을 해변에서 튕기고 놀다가 바다로 흘려보내는 사건이 있었는데 우리가 바다로 둥둥 떠가는 공을 발견한 건 이미 헤엄쳐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흘러간 후였다. 멀어지는 공을 쫓아 해변 끝까지 가보았지만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바위 사이에 끼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몸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바위를 지나가면 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안전이었기에 과감히 공을 포기하자고 말했다. 350밧(13,000원) 짜리 공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고 아이들을 설득했다. 어제의 포기가 내심 아쉬웠던 우리는 숙소에 있는 카약을 타고 다시 한번 공이 있던 바위에 접근하기로 했다. 하루가 지난 터라 공이 그 자리에 없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카약을 타고 공을 찾으러 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오늘의 모험이 될 수 있었다.

 구명조끼를 단단히 입고 우리 셋은 숙소 마당에 놓여 있는 카약을 해변으로 끌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플라스틱 카약이었다. 낑낑대며 카약을 끌고 있는 우리를 본 리조트 매니저가 다가와 같이 끌어주며 카약을 타 본 적이 있냐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카약을 타 본 적은 있지만 바다에서는 처음이라고 해맑게 미소 지었다. 매니저는 노 저을 때 주의사항을 알려주며 조심히 타라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여러 번 강조해서 말하고는 그녀의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바다에 띄워진 카약에 한 명씩 올라탔다. 조금만 움직여도 기우뚱 거리는 카약에 아이들도 나도 바짝 긴장되었지만 진짜로 우리만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다. 나와 첫째 아이가 노를 젓기로 하고 둘째는 촬영을 담당하기로 했다. 모험에서는 역할 분담이 확실해야 한다. "모래사장 위를 걷는 것보다 쉽네"라고 아이들에게 여유 부리며 말했지만 노를 젓는 내 팔과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늘색, 옥색, 에메랄드 색 바닷물을 가르며 깊은 바다로 노를 저어 갔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배의 속도도 제법 빨라졌다. 노를 함께 젓는 첫째 아이에게 우리 제법 잘 맞는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들에게 친한 척 호들갑은 이럴 때 떨어야 제맛이 난다. 카메라 촬영을 하던 둘째 아이는 바닷속에 물고기를 보느라 정신없었다. 맨눈으로도 예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게 보인다며 노를 젓다 말고 다시 한번 호들갑을 떨었더니 둘째 아이가 위험하다고 노 젓는데 집중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뭔가 역할이 바뀐 것 같았지만 바로 수긍하고 집중해서 해변을 따라 노를 저었다. 공이 있던 바위에 도착했지만 예상대로 초록색 공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들은 공을 못 찾은 것에 대해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공을 찾았다면 성공적인 모험이 되었겠지만 오늘의 모험은 공을 찾지 못해도 성공이었다. 공을 쫒은 오늘의 모험은 심심함을 달래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공을 찾지 못한 탓인지 열심히 노를 젓은 탓인지 허기가 밀려왔다. 점심을 먹으러 어제 갔던 식당에서 어제 먹었던 음식을 주문하고 어제처럼 맛있게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워킹스트릿이라는 여행자 거리에서 150밧을 주고 파란 공을 새로 샀다. 잃어버린 공을 찾는 오늘의 모험은 돈으로 해결한 셈이지만 나름 괜찮은 모험이었다. 저녁 무렵에는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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