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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Aug 24. 2023

18. 일출의 정석

하루를 부지런하게 시작하는 기술

 섬에서의 하루는 단순하다. 해가 뜨면 아침을 먹고,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오면 점심을 먹고, 해가 기울어지면 저녁을 먹고 해가 지면 하루를 마감한다. 단순한 하루의 시작을 일출 보는 일로 한다면 부지런한 하루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오면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지는 탓에 일출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른 새벽에 해가 뜨는 섬의 반대편까지 가기 위해서는 용기를 낼 시간이 필요했다.  

 코리페 섬 둘째 날 아침, 방갈로 문틈으로 붉어오는 하늘을 보니 일출이 보고 싶어졌다. 이른 시간이라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여전히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른 시간이라 오히려 괜찮을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해 뜨는 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다. 코리페섬은 작은 섬이라 반대편 선라이즈 해변까지 도보로 15분이면 도착하니 지금 나가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나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기가 어렵지 일단 몸을 일으키면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벼운 운동복차림으로 숙소를 빠져나와 선라이즈 해변 방향으로 걸었다. 이미 숙소 앞 해변에는 달리기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었다. 미라클 모닝을 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그들은 어떤 기적을 만들어낼까 상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반대편 해변을 가기 위해서는 섬을 가로질러야 한다. 섬을 가로지르는 길에서는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 어딜 가든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생각에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선라이즈 해변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선라이즈 해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출 장면을 눈에 담느라 내 시선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해를 맞이하기 위해 일찍부터 해변에 느슨하게 앉은 사람들, 떠오르는 해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 기도를 돕기 위해 탁발 공양을 하시며 지나가는 승려님, 누구보다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는 개들, 나란히 정박해 있는 배들 그리고 붉게 떠오른 태양. 매일 변함없이 떠오르는 해을 북한산 꼭대기에서도 동해 바다에서도 맞이한 적이 있지만 '선라이즈 해변'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있으니 일출의 정석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매일 보는 해인데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매일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매일 일출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부지런한 하루를 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코리페 섬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에도 일출을 보러 부지런히 선라이즈 해변으로 갔다. 이번에는 둘째 아들과 함께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나를 따라나서는 걸 보면 둘째가 나를 더 닮은 것 같다. 일출을 보러 가는 내내 둘째 아이는 참새처럼 짹짹거렸다. 나중에 에베레스트도 같이 가자는 말에 나는 "일단 콜!"이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정말로 둘째 아이가 모험심 강한 청년으로 자라서 나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가자고 할지는 모르지만 그때가 되어 둘째를 따라나설 수 있으려면 지금부터 체력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닮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와 함께 보는 일출은 더욱 특별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함께할 때 느끼는 기분이 '연애'라면 나를 닮은 아이와 좋아하는 일을 함께하며 느끼는 감정은 '행복'이었다. 아이와 함께 일출을 보며 이제 막 시작하는 하루가 안녕하기를 조용히 바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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