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8

노처녀 성장소설

by 유니스 황

노처녀 성장소설 <유니스 다이어리>

# 응답하라 1998- 새해 카운트 다운


입고 있는 청바지가 딱딱하게 굳을 정도로 날은 추웠지만 뭔가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 유학 온 지 한 달만에 IMF 경제위기의 여파는 점점 심해져만 갔고 겨울방학이 되자 부풀었던 꿈을 커다란 이민 가방에 다시 구겨 넣으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뉴욕으로 온 지 4개월이 되었던 시점. 엠파이어 빌딩 바로 앞에 살면서도 엠파이어 꼭대기에 올라가 보지도, 자유의 여신상에 가지도 않았고 열심히 공부만 했던 때였다. 하지만 힘겨움과 불안함을 떨칠 충전의 이벤트가 필요했기에 1998년을 맞이하는 새해 카운트 다운에 가기로 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지만, 외국에서 새해를 맞는 일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몇 명의 일본 친구들과 함께 타임스퀘어로 갔다. 뉴욕의 시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기에 점심시간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왕 왔으니, 최고로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어 낮부터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며 기다렸다. 4~5시가 되자 이동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기다림이 지루해질 사람들을 위해 이런저런 이벤트를 하고, 나는 알지 못하나 사람들은 열광했던 누군가의 공연들도 이어지고... 미리 사놓았던 식은 피자와 버드와이져도 길에서 서서 먹어야 했다. 그래도 맡아 놓은 안전 라인의 제일 앞자리를 버릴 수는 없어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않았다. 빌 코스비 아저씨도 봤고, 인기쟁이였던 쥴리아니 뉴욕 시장도 코 앞에서 봤다.


사람들은 술에 취해, 한 해의 마지막임에 취해, 그곳이 맨해튼 타임스퀘어임에 취해 흥분했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인파에 화장실은커녕 뚫고 나가기 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술 취한 청년들은 마시던 버드와이져 병에 소변을 보기도 하는 상황, 함께 왔던 일본 친구들 중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 상황, 지루하던 '기다림'이 이제와 포기할 순 없는 ‘오기’로 변한 상황이었다.

추운 길거리에서의 10시간이 넘는 기다림을 지나 새해가 밝아오기 20분쯤 남은 시간. 맨해튼의 카운트 다운 풍경을 담기 위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수많은 방송 카메라들은 뉴욕의 새해맞이를 찍기 위해 분주했다.


어디선가 마이크를 든 금발의 아저씨가 카메라와 함께 다가와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미국에 온 지 고작 몇 달 밖에 안 된 주제에 난 “Sure~”라고 너무도 여유롭게 답을 했다. 프랑스 국영방송의 생방송 뉴스라고 했고 자신과 함께 몇 마디 할 수 있겠냐고 묻기에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허락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카메라는 내 얼굴을 잡았고 난 뉴욕 시민의 자격으로 프랑스 뉴스에 출연했다.

프랑스 기자 아저씨는 1998년 새해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단순한 생활영어 위주로 간단하게 말할 것 같던 난 태연하게 대답을 시작했다. (발음만 들으면 네이티브 같지만 문법이나 작문은 그리 뛰어나지 못 한 나였다.)


“전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고 올해는 원하는 학교를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소망으로 말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있고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든 경제를 위해 금 모으기도 하고 있고 이 상황을 위해 모두 하나가 되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겨낼 것이고 힘든 나의 나라가 꼭 다시 살아나기를 소망하고, 꼭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영어로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하려면 가물가물~ㅎ)

마치 아마겟돈을 앞두고 인류의 안위를 걱정하는 미국 대통령의 연설처럼, 너무도 비장하게, 매우 결연하게 난 나의 1998 새해 소망을 우리나라에게 양보했다.


인터뷰를 하던 프랑스 기자 아저씨조차 뭔가 뭉클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I’ m from KOREA~~~~!!”

나는 사자후를 토해내듯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분명 다시 일어설 나의 나라 대한민국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다.

주변을 둘러싼 뉴욕 시민들은 마치 오바마의 연설이라도 들은 것 마냥 당찬 20대 동양인 여자아이의 말에 응원의 박수와 환호의 휘파람을 보내주었다. 코리아라는 말을 외치는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내 1998년의 소망과 꿈을 양보한 대한민국이 더욱 소중해졌다.

그 후 난 도끼를 욕심내지 않은 나무꾼처럼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했고, 그 해의 마지막 카운트 다운 역시 한국이 아닌 보스턴에서 할 수 있었다.


요즘 나라가 무척 혼란스럽다. 자기보다 더 힘든 주변과 나라를 진심으로 생각하며 금을 모으고 하나가 되던 그때, 정의와 공정함을 외치며 그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던 그때의 그 뭉클하던 마음들은 어디 가고...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리기 위해, 서로 흠을 내기 위해, 자신들만의 이득을 위해 극단적으로 갈라져 싸운다. 서로 듣지 않으려 하고 자기들 목소리만 내고 있다.

대한민국, 1998년의 내 꿈을 기꺼이 양보했던 대한민국이 새해엔 정신 좀 차리고 부디 멋져졌으면 좋겠다. 이름을 부르기에 부끄럽지 않은 그런 나라와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5. 4. 3. 2. 1~!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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