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성장소설
어젯밤부터 약간의 코감기 증상이 있는 것 같아서 이런저런 영양제에 코감기약을 먹었음에도, 반 병쯤 마신 와인 덕분에 약효가 좀 떨어졌는지 아침까지 여전했다. 심지어 목까지 간질간질한 것이 심상치 않았다. 페퍼민트 티를 뜨겁게 우려 출근길에 열심히 마시며 왔다만 좀 더 적극적인 액션이 필요한 것 같아 점심을 먹은 후 약국으로 갔다.
길 건너 대형 약국으로 갈까 하다가 근처에 작은 약국이 보여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쇼윈도로 보이는 약국 내부 풍경이 상당히 암울해 보였다. 아무리 낮이지만 조명도 없이 컴컴한 게 왠지 모를 어둠의 기운이 자욱했다.
다시 길을 건너가자니 횡단보도가 좀 멀어 귀찮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캡슐 감기약 두어 개 사러 왔으니 그냥 간단히 사고 가자 싶어 일단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약들도 무지 형식적으로 적당히 구비해 놓은 듯한 인상에 진열장에 약들도 별로 많지가 않았다.
‘장사를 접을 셈이신가...’
데스크에 팔을 기대고 거의 한쪽으로 눕다시피 엎드려 있는 약사 선생님을 발견했다. 혹시 주무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안녕하세요~” 하고 불러보았다. 쓰윽 몸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거무죽죽한 어둠이 드리워진 게 수심이 가득하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오늘 아침 부부싸움이라도 대판 했거나, 어디서 돈을 떼였는데 집에 말을 못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장사도 안되는데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 만사가 다 귀찮고 의욕도 없는 얼굴이랄까... 왠지 약을 달라고 방해하기도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 어두운 그림자에 나까지 전염될까 싶어 필요한 코감기약과 목감기약을 좀 더 소리 높여 명랑하게 주문했다.
약사 아주머니는 (왠지 선생님이라는 말이 참 안 어울려 보여서..) 나른한 몸짓으로 코감기약과 목감기약 한 상자씩을 빼서 얼마라는 말도 없이 데스크에 내려놓았다. 난 얼른 카드를 드리며 4500원이 찍히는 카드 단말기를 확인했다. 잠시 기다렸다만 작은 봉투에라도 넣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아 주섬주섬 두 상자를 챙겨 나왔다. 나가려는 내 뒤통수에 한 글자도 쓸데없이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한 개당 두 알씩~” 이렇게 딱 6글자를 건조하게 던지시는 약사 아주머니.
건물주가 보증금을 심하게 올리셔서 쫓겨나시는 걸까? 아님 남편이 사고를 치신 걸까? 불친절함에 불쾌한 기분이 들기보단 심각하게 손이라도 잡아드리며 사연이라도 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억울한 귀신의 사연을 들어주는 갓 부임한 고을 사또처럼. 비타민 가득 담긴 따뜻한 유자차라도 한잔 따라드리며 아주머니의 지친 마음을 좀이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이건 내가 착한 게 아니라 그 얼굴의 검은 어둠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다)
종종 병원에 가보면 환자보다 더 아파 보이고 힘들어 보이는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이 많다. 누군가의 아픔을 치료하느라 정작 자신들의 아픔은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짠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느라 정작 자신들은 때가 한참 지나 대충 배나 채우자는 심정으로 끼니를 때우는 요리사들.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날마다 피곤한 야근에 개인 생활도 없이 정작 본인들의 삶은 우울해지는 사람들...
우리 이젠 스스로를 좀 더 아껴주고 챙겨줬으면 좋겠다. 나중으로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좀 더 행복하게, 지금 좀 더 만족스럽게. 남을 의식하듯 힘든 나를 좀 더 의식하며 더욱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내가 건강해야 그 건강함을 주변과도 나눌 수 있고, 내가 행복해야 그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약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던 수정약국 약사 아주머니도 부디 자신의 마음 건강부터 챙기시며 그 어둠의 기운을 떨쳐버리실 수 있길 조용히 바래본다.
epilogue
우리들의 건강한 날들을 위하여 내 음악 중 "아프지 말아요"를 함께 링크해본다~^^
우리, 아프지 말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YU5XSJ12MH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