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바라보기

노처녀 성장소설

by 유니스 황




간만에 서울에서 만난 외수 선생님과 오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선생님 숙소에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좋은 이야기가 오갔고, 풍류를 아는 멋진 작가들의 노래도 이어졌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봄밤이었다.


집으로 가는 차가 끊기지 않았을 시간. 나름 알뜰한 유니스 라이프의 실천을 위해 택시를 타고 아직 심야 버스가 다니는 근처 정류장으로 갔다. 충정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꽃향기가 묻어났다. 흘렁흘렁 조금 취한 느낌이 좋았다. 오늘은 실로 아름다운 봄밤이구나~ 싶어 더욱 좋았다.


버스를 탄 후 창밖을 보며 오늘의 멋진 대화와 장면들을 조용히 곱씹고 있는 중에, 성큼성큼 어떤 남자가 내 옆자리로 와 앉았다.


‘아~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불편하게 내 옆자리로 오고 난리야...’


라고 생각을 했지만, 계속 창밖만 보고 있었기에 그가 옆에 앉는 기척만 느낄 뿐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문득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옆을 슬쩍 쳐다봤다. 그는 외투를 벗어 덮고 있었고, 그 남자만 덮어야 할 그 외투는 내 몸의 반 정도까지 함께 덮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위험 알람이 전달되었다.


‘아, 예전에도 이런 변태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외투를 이용해 나에게까지 조금 덮이게 한 후 내가 자는 틈을 이용해 내 다리를 슬금슬금 만져대던 쓰레기 변태 자쉭! 그 움직임과 의도를 알아챈 뒤 제대로 된 쌍욕으로 그 자쉭을 물리쳤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는 순간, 아직 아무 짓도 안 했지만 뭔가 수상한 이 변태 꿈나무도 그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고개를 휙~ 그 자쉭 쪽으로 돌려 얼굴을 똑바로 3초 정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쓰윽 한번 올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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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네 얼굴을 찍어 생생하게 홍보해줄게~’


라는 마음을 가득 담은 눈빛도 강력히 보냈다. 그 자쉭은 내 몸의 반을 덮었던 쟈켓을 슬금슬금 자기 쪽으로 거두어 안았다.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된 듯싶었다. 때마침 버스는 정거장에 도착했고 그 자쉭은 일반 버스보다 더 비싼 돈을 내고 탄 경기도행 광역버스에서 두 정거장 만에 하차를 했다. 서둘러 급히 내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난 이 변태 꿈나무가 제대로 목적을 가진 변태쉐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잠시 후 버스는 신호등에 걸렸고, 그도 마침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대기 중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기에, 오늘 류모 시인이 '돼지저금통 눈'같다고 계속 놀렸었던 그 눈으로 씨익~ 눈웃음을 한번 날려줬다. 그리고는 건반 위에서 아름답게 움직여야 할 내 손가락 중 3번 손가락을 쓰윽 한번 들어줬다. 순간 신호가 바뀌었고, 오늘의 영업이 뭔가 순조롭지는 않겠구나 싶어 하는 그 쉐리의 억울한 표정을 뒤로하며 버스는 유유히 달리기 시작했다.


매번 맞서 싸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쫄지 말자. 괜히 무서워서 못 본 척하지 말고, 두려움에 눈 마주침을 피하지도 말고, 똑바로 바라보자. 곳곳에 난무하는 찌질이 변태들, 때론 똑바로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물리칠 수 있다.


집에 안전히 도착해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낮에 읽다가 덮어둔 외수선생님의 새 책을 다시 펼쳤다.

제목은 <완전변태>

아... 뭐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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