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사람들은 빛이 난다

노처녀 성장소설

by 유니스 황

지하철을 타고 술 약속에 가고 있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며, 좋은 글들에 좋아요를 누르며. 하창수 작가님의 "편견"에 관한 글과 그림을 읽고 감탄의 좋아요를 눌렀다. 지인의 커밍아웃에 관한 멋진 화답의 그림과 글. 흠... 나도 그런 편견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보스턴에 살던 시절, 난 레드삭스 구장이었던 팬웨이 파크 바로 옆에 살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유명한 게이클럽이 있었다. 모르고 지나다닐 때는 남자들이 엄청 줄을 서있는 클럽이라 야구팬들이 끝나고 한잔 하는 곳인가 싶었는데 종종 남자들끼리의 포옹과 키스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들 사이에선 매우 유명한 클럽인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엔 나이 든 백인 아저씨와 스키니한 젊은 남자 연인의 모습이 약간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나중엔 뭐 그런가 보다 싶기도 하고 그리 별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짧은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지나가도 나에겐 매우 안전한 곳이라, 늦은 밤 마트에 갔다가 그 블럭 즈음에 오면 안심이 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지하철 맞은편에는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의 20대 초반 소녀가 앉아있었다. 한자리 건너 앉아 있던 매우 비슷한 분위기의 또 다른 소녀가 먼저 내려야 하는지 내 앞의 소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러 왔다. 일반적인 소녀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이 들렸지만 왠지 모르게 너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순간 입에 작별 키스 하는 모습을 보았다.

‘분명 한국말을 했는데... 외국에서 매우 오래 살아서 작별 인사를 키스로 하나?

근데 그런 작별 인사도 대부분 볼에 하지 입술엔 잘 안 하지 않나...?’

잠깐 낯선 그 장면에 몇 개의 생각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내릴 역이 다 되어 문 앞으로 갔던 소녀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지 다시 그 앞으로 와 쪼옥~! 입맞춤을 한 번 더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난 앉아 있는 그 소녀의 표정을 조금은 살피듯 바라봤다. 그녀에겐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 특유의, 사랑받는 사람 특유의 빛이 났다. 설렘 가득한 핑크빛 미소가 그녀의 얼굴 가득 번지는 걸 보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받는 사람들은 특유의 빛이 난다. 남자에게 깜짝 프로포즈 받는 여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모르고 고백 장소에 왔던 여자들의 첫 모습보다 고백을 받을 당시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처음엔 분명 별로 안 예뻤는데 고백받는 순간의 그녀들은 놀라울 정도로 환하게 아름다웠다. 그 설렘과 행복함이 그들의 모습을 더 빛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던 기억이 났다.


난 세상의 다른 방식의 사랑에 대해서 별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레즈비언의 모습 또한 한 명은 매우 남성스러운 느낌일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청순가련한 착한 소녀의 이미지는 아닐 거라는 나만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의 사랑은 일반적인 공공 공간에서의 당당한 표현은 아닐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같다. 아닌 줄 알았던 내 안의 또 다른 편견을 보게 된 순간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다시 깨뜨릴 수 있기에 고맙기도 했다.


그래,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분명 욕먹을 일이 아니다. 물론 한쪽은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만 좋아하는 일은 분명 이기적인 욕심일 수 있겠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또한 나를 좋아하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가 싶었다.


문득, 다른 누군가로 인해 그렇게 아름답고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날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해졌다. 요즘 점점 못생겨지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연애를 너무 오래 쉰 탓일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거울을 보고 예전보다 못생겨졌다 싶은 기분이 든다면, 우리 사랑하자. 환한 빛이 나서 주변까지 환해질 정도로 더욱 사랑하자. 부디 멋지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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