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비밀
오랜만에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지인을 기다렸다.
그녀는 얼굴에 그늘이 가득 한 채 나타났다.
이틀 전 정기검진에서 완치 판정을 받고 한숨도 못 잔 상태라고 한다.
"이제 약을 안 준다고 하지 뭐예요. 처방 없이 나오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거예요. 집에 남은 약이 조금 있긴 한데 그게 기껏해야 한 달 치 정도죠. 이제 약 안 먹어도 된다고 하면 좋을 줄 알았더니 막상 교수님 이야기 듣고 마음이 안 잡혀서 연락드렸어요."라고 한다.
"축하드려요! 파티 열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간 고생 하셨어요!"
"다른 사람이 완치 판정받았다면 부럽기도 하고 축하한다고 했을 텐데, 막상 내 일이 되니까 축하할 기분도 안 나고 마음이 뒤숭숭해요. 끈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콩닥콩닥 거리는 게 괜히 불안해서 잠이 안 왔어요. 축하하고 어쩔 마음도 전혀 아니고, 가족들한테도 말 안 했어요. 무슨 마음일까요?"
어려서부터 어른아이로 자란 사람들은 돌봄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늘 갖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누군가를 잘 돌보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늘 주변을 살핀다.
암 진단받고 두려움도 잠시, 병원에서 모든 것을 척척 해주는 전문가들 틈에서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한평생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씩씩하다, 용감하다, 책임감 있다고 이야기 들었던 자신을 벗고, 아픈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 죽음이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주변의 도움이 낯설지만 어쩐지 든든하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잘하면서 빠르게 회복한다. 그러나 회복을 목전에 두거나, 완치 판정을 받는 순간 다시 무너진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그 느낌이 아픈 것보다 더 싫은 것이다.
그 잔인한 비밀을 알아차리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이젠 정말로 나 자신과 손을 잡아야겠어요. 가짜로 씩씩한 척 살았던 것도 나였고, 의지하면서 낯설지만 든든했던 것도 나였어요. 하지만 진짜로 원하는 것은 나 스스로 두 발을 바닥에 딛고서 한발 한발 내딛는 거예요. 누가 잘한다는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누가 도와주면 고맙기야 하지만, 결국엔 부축 없이 스스로 걸어야죠."
자연스럽게 나비 포옹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떠났다.
나도 어떤 잔인한 비밀 앞에서 머뭇 거린 적 있었다.
나 혼자서는 절대로 못 할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안 해도 되는 것을 붙잡고 '도와주세요!'라고 주변에 소리치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스스로 직면한 나 역시 나비 포옹으로 나를 안았다. 토닥토닥 두드리는 그 박자를 심박수와 맞췄다. 그리고 씩 웃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