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꾼 꿈
겁이 많은 나는 높은 곳, 잔인한 장면, 무서운 소리, 지저분한 것들을 잘 피한다.
철저하게 나를 통제하면 평생 잘 피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삶은 그런 내 믿음을 늘 깬다.
꿈에서도 깬다.
어제는 아들의 얼굴에 작은 구멍들이 송송 나면서 점점 번지는 게 아닌가. 그 구멍들이 다 검게 깊어지는데 구멍을 제대로 보면 그 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두려움이 일어났다. 혐오와 두려움이 일어나는 그 장면에서 '이거 꿈이잖아. 깨야지. 깨야 돼!'라고 버둥쳤지만 쉽게 깨지지 않는다.
아들은 자기 얼굴과 목으로 번지는 구멍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걸 붙잡고 도대체 이게 왜 이러냐고 무서워서 덜덜 떨며 얼굴을 막 쓸어본다.
왜 이 꿈이 깨지 않지?
도대체 왜?
그 순간 아들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침대 옆에 서서 "엄마! 못생겼다. 못생겼다. 왜 그렇게 인상을 써!"라며 흔든 것이다.
안 그래도 꿈에서 아들 얼굴이 이상해서 무서웠는데 그 꿈을 깨운 게 아들이다.
"나 데려다줄 거야?"
"나 손이 저려. 손 좀 주물러 줘. 데려다줘야지."
아들이 내 열손가락을 지근지근 눌러주면 온몸에 피가 도는 기분이다.
'휴... 다행이네. 저 녀석 지가 내 꿈에 나온 줄도 모르고 날 깨웠네!'
아들을 데려다주는 길에 꿈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여드름 난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행이다. 별일 아니겠지?"
"내 얼굴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원해?"
"그럴 리가. 너무 무서우니까..."
"내가 그렇게 징그럽고 무섭게 바뀌면 나 안사랑할 거야?"
"아니. 그래도 사랑하지. 어떻게든 고쳐야지."
"고치는데 내가 아프다고 싫다고 무섭다고 해도 억지로 고칠 거야?"
"네가 더 고치고 싶어 할걸? 그 정도 얼굴이라면?"
"내 말은 내가 안 할 거라고 해도 엄마가 보기 싫다고 고칠 거냐고?"
"네가 니 얼굴인데도 고치기 싫다면... 아.. 모르겠다. 어려워!"
"내가 싫다고 하면 안 하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얼른 내려!"
괜히 말했나. 엉뚱한 데서 말꼬리가 붙잡혔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와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꾼 그 장면이다. 똑같이 아들의 얼굴과 목 주변으로 구멍들이 퍼져나간다. 아 징그러워. 무서워.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냐고. 아 뭐야 뭐야. 괜히 잠들었나 후회했다. 나는 자주 꿈에서도 의식이 깨어 있지만 여전히 조종은 어렵다.
이번 꿈에서는 어찌 된 게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지 못한다.
그러다 갑자기 그 구멍들이 아들의 온몸으로 퍼져서 허물이 벗기듯 떨어져 나간다.
뽀얀 새살로 새로 태어난 아이는 더 이상 중학생이 아니다. 청년이 된 모습이다.
뒷 부분은 흐려진 상태에서 깼다.
"오! 사춘기가 끝나는 건가?"
아침에 그 꿈에서 멈췄다면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을 장면이다.
오히려 근심하며 조심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이어진 꿈은 내 바람을 실어서인지,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인지 허물을 벗은 아들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최악인 줄 알았더니 시작을 알리는 꿈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