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청개구리가 되고 싶었다.

어차피 할 거니까

by 석은별

"맨날 지 멋대로하고!" & "너 나 무시하냐?"

나랑 친해지는 전단계 과정의 사람들에게서 많이 들었던 말이다.


누가 간섭하는 것 싫어하고 남들 다 하니까 그대로 지켜라고 하면 차라리 안 하겠다고 발 빼거나, 시키면 안 한다고 하고, 그럴 거면 차라리 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마음 다잡아서 성취한다.

성격상 그런 거라고 믿었다.

그 성격상에는 청개구리 근성이 숨어 있다고 믿었다.




한때는 "나라도 나 같은 딸이랑 맨날 같이 살았다면 속이 터졌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시키는 건 결국엔 하지만 하라는 그 순간에는 안 한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이 있거나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걸 다 보고 한다. 지금 당장 하길 바라는 누군가는 나를 보면 속 터져한다.

"어차피 할 건데 왜 남의 빈정을 상하게 해서 다 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쌓이면 "역시 알아서 잘하니까!" 바뀌기도 한다.

일상에서야 그렇게 하면 친해지는 계기라도 되지만 조직 생활에서 이런 나는 어딜 가나 공격받기 일쑤였다. 그게 상대방들에게 어떤 마음을 일으키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게다.




나를 간파한 부장님이 한분 떠오른다.


"공문 봤어요? 처리해야지?"라고 확인하시면 "네!"라고 대답하면 보통 바로 그 공문을 처리하는 게 부하직원의 행동일 테다.

그런데 부장님은 내가 대답을 했으면서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으니 까먹었나 싶어서 다음날 재 확인을 하셨단다.

또다시 "네!" 대답하고 결재를 안 올린 채 다른 일로 바빠 보이니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단다. 그 공문이 그렇게 급한 건 아니지만 내 태도가 자신을 기만한다고 여겼단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시간 전에 결재가 올라왔고, 이걸 언제 다 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통해했다고 하신다.

아마 그 결재에 오류가 있거나 손댈 게 있었다면 엄청 화를 냈을 텐데, 한 번에 처리해도 될 정도로 말끔해서 그제야 이해했단다. 그리고 기한을 이틀 앞두고 다 마무리 지은 거라 마음만 상했지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어서 깨달았다고 하셨다.


'우리 딸이랑 비슷한 사람이네!'라고...


만약 부장님이 딸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를 상당히 오해하고 싫어했을 거라고 했다. 대화를 잘 이끌어내는 분이기도 하셨지만 나 역시 그분의 태도에 호의적이었기에 귀담아듣게 됐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또 내 알아서 할게!라는 게 습관적으로 나온 거구나.'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여태 한 명도 없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그간 삶이 내 중심적이구나 싶었다. 좋게 말해 자유분방함이고 유능함이지만 조직에 안 어울리고 튀는 사람에 불만 가득한 사람으로 비치기 딱 좋았던 것이다.




그제야 떠오른 한 명이 있다.


한 살 어린 상사를 둔 적이 있는데 유독 나한테만 시비를 거는 기분이었다.

하루는 "제가 뭘 놓친 건지 정확하게 알려주시면 다시 고칠게요!"라고 했더니 괜히 단어사전을 펼친다거나 서술어를 바꾼다거나 등으로 시간을 끈다.

"다 결정하시면 얘기해 주세요."라고 뒤돌아섰다.

"내가 한 살 어리다고 무시해요?!"라고 소리 지른다.


"설마요. 지금 다른 것도 해야 되니까...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해요."라고 대화를 요청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나를 향해 분노의 활화산을 키우고 있다. 조직생활이 편할리 없다. 어느 날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기간의 정함이 있어 자연스럽게 퇴사했지만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그 상사와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하다.




부장님과 대화 중 뒤늦게 깨달았다. 과거에 내가 한 살 어린 상사를 얕봤구나.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도록 내 마음대로 한 게 맞는구나. 지금처럼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당연한 게 아니다. 천운이다. 그 부장님이 짚어주지 않았으면 나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익숙한데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괴로워했을 것 같았다.


이후 내 사회생활은 꽤 많이 바꼈다. 조화를 배운 것이다.





이렇게 내 멋대로 하게 된 배경에는 성장과정도 한몫한다.


"은별인 알아서 잘해요."

"은별이가 얼마나 씩씩한데요."

"은별인 자기 할 몫은 반드시 하는 아이예요."

"은별이가 못하면 아무도 못해요."

"은별이가 책임감이 얼마나 강한데요."


그 말대로 알아서! 씩씩하게! 자기 몫을! 어렵더라도! 책임감 있게! 해냈어야 했다.


그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는 내 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어려운 존재로 인식이 되는데 밑거름이 된 것이다.


사실 저런 말들에 내 욕구는 깡그리 숨어 있다.


때로는 하기 싫었고, 뒤에 숨고 싶었고, 누가 내걸 대신 해주길 바랐고, 나도 못한다고 말하고 싶었고, 무책임하게 떼를 쓰고 싶었던 내가 숨었던 게다.


그게 밖으로는 청개구리처럼 보였던 게다.


어차피 저 말들대로 다 해낼 거였으니까...





젠 그 말을 벗어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만큼은 정말로 지 알아서 하면 좋겠다.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운동, 사고 싶은 물건을 자기 마음대로 다 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안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면 좋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0화고통에도 순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