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이라고 인정할 수 있으면 좋은 곳이지
서울 생활을 시작한 딸과 매일 통화를 하면서 나름대로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 마음이 편해지고 있다.
"요즘 과제가 진짜 많아요. 과제 하나 끝내고 나면 후련해하기도 전에 다른 과제 하느라 시간이 없어요. 근데 작년하고 다른 건 내가 좋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거예요."
각 과목마다 첫 시간에 교수님들을 만난 소감에서 왜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하는지 느껴졌다고 한다. 교수님들마다 역량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자부심이 있어 보이는 그 모습에서 후광이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아끼고 배려하고 지원하려는 태도가 기본이라고 했다. 그리고 학생들 역시 그전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캐릭터들이 이곳에는 당연하게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개강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니 과제가 쏟아지는 가운데 발표 장면이 자주 있다고 한다.
다들 면접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그런지 한 명도 떨거나 발표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 없이 매끄럽게 발표하는 장면에서 주눅 든다고 했다. 발표라면 제법 자신 있어하는 녀석의 입에서 "주눅 든다." 는 말을 들으니 대충 상상이 된다.
"네가 주눅 들면 옆에 있는 사람도 주눅 들 테니까 쫄지 말고~!"라고 하니까 에타에 올라온 글이랑 같다고 한다.
어떤 학생이 자신이 왜 여기에 뽑혔는지 모르겠다고 다들 너무 잘해서 수준차이를 느낀다는 푸념에 달린 댓글을 캡처해서 보여준다.
"너도 잘하니까 붙은 거야. 교수님들 안목이 생각보다 대단해. 지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더 앞을 내다봤으면 좋겠어."
"옆에 앉아있는 친구도 너 보면서 그런 생각해. 걱정 마."라는 위로의 글을 보니 내 마음도 뜨거워졌다.
"엄마. 아무래도 내가 진짜 좋은 곳에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이유가 내게도 와닿았다.
"참 예쁜 마음들이네. 너도 글 하나 달지?"
"뭐. 그게 다 내 마음이니깐요!"
딸이 중학생 때 물리에 빠져서 과고를 가고 싶어 했던 적이 있다.
"갑자기 무슨 과고야? 너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엄마인 나부터 딸의 선언이 영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기가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꼭 잘 알아야지 만들고 싶은 화면을 담을 수 있겠다고 한다.
그래서 어차피 학생 시절은 공부에만 전념하는 시기니까 나름대로 과고를 가서 원 없이 공부하고 대학은 원하는 과를 가겠다고 한다. 루트가 아주 허무맹랑하게 느껴졌지만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라 상담을 갔다. 그곳에서 나와 딸은 현실을 마주했다.
"어머니. OO 이는 그냥 모범생 정도지 무슨 영재나 천재 이런 건 아니에요. 거길 우리가 추천서 써주는 거 그건 좀...."
아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서 수학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아. 그럼 선생님들 말씀은 원서도 못 쓸 정도라는 거죠?"
"어차피 떨어질 거 괜히 왜 힘 빼시려고... OO아. 그냥 네가 좋아하는 과목이면 그걸 혼자서 열심히 공부해. 무슨 과고야?"
사립중학교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날은 참 부끄럽고 수치스러우면서도 우리가 현실을 너무 몰랐나 싶었다.
딸의 충격은 더 심했다. 당장 부끄러워서 다음날 학교를 어떻게 가느냐는 것이다.
"어른들이라고 다 어른스러운 건 아니지. 엄마도 가끔 유치하고 치사할 때 있는데 어제 그 선생님들도 딱 그 수준이었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거지 선생님 다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전에 좋은 선생님들 만났던 적도 있었으니까... 올해는 이런 경험이 우리한테 다른 길을 열어주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말은 덤덤하게 했지만 그 수치심에 나도 화가 났다.
특히 담임은 딸과 앙숙이었다. 시험에서 8점짜리를 틀렸다고 그어 놓고선 "나도 인간인데 실수할 수 있지!"라고 대한다거나, 다른 시험에서 아이가 점수에 대해 항의했다가 뒤늦게 부분 점수를 주면서 "괜히 사람 성가시게!"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아이가 교감선생님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어쩌겠나. 이미 틀어진 사이에서는 틀어지는 일이 생기는 게 이치였을지도...
그날 이후 아이들을 위한 기도가 더 분명해졌다.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바라자며 딸은 일반 인문계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의 인간관이 다져졌다.
중 3의 빌런 선생님들 덕분에 고등학교에서 만난 1, 2,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나 그 이전에도 꽤 좋은 교사들을 만났다는게 나름 정리가 됐다. 그렇게 지나 온 시간을 통해 이번에 들어간 학교에서도 역시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선명해지면 그곳에 반드시 가게 된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하지만 또다른 빌런들도 있을거라는 건 스스로 경험해야겠지?)
이제는 학생들 마저도 그런 인간관을 갖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어떤 흑역사든 지우기만을 노력하기보다 그걸 바탕으로 내게 더 분명해지는 것들을 찾아내자는 것. 그것이 지금의 현실에 펼쳐지고 있어 참 다행이다. 그걸 잘 이해하고 있는 딸도 기특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