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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아빠가 죽었어

아들이 아빠와 화해하는 방법

by 석은별

한동안 소원하던 두 사람 사이가 산들바람이 불듯 온기가 느껴진다.


아침에 남편이 말했다.


"태양이 데려다주는 길에 들었는데, 꿈에서 내가 죽었대.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보니까 너무 슬펐대. 그러고는 이제 나한테 잘해줘야겠구나 생각했다지 뭐야!"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이 어때?"


"자기가 나 미워하는 마음이 꿈에서는 죽어버렸으면 하는가 싶어서 속상하기도 했는데, 현실에서 나랑 잘 지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니까 나쁘진 않네."


"찜찜하진 않아?"


"어차피 다들 한 번씩 경험하는 게 죽음인데 뭘. 꿈에서라도 그렇게 경험하면 현실에서는 덜 할지도 모르지."


"아냐. 꿈에서 누가 죽는 걸 봤는데 그게 현실이 되잖아? 그럼 자신이 무서워져. 그래서 더 힘들어질걸?"


"또 또 지 얘기한다......"





아들과 남편은 바이오리듬처럼 둘 사이의 관계에 리듬이 있다. 그 리듬으로 제법 익숙해졌을 법한데도 틀어지면 골이 참 깊다. 그러다 회복되어 나오면 둘 사이의 의리는 이 세상 웬만한 형제들의 의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돈독해진다.


언젠가 아들과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왜 게임을 안 하는지 알아? 나도 어쩌면 게임중독이 될 수 있었는데, 아빠가 늘 내 게임을 다 이겨서 그래. 내가 시작한 게임을 아빠가 따라 하잖아?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나를 따라잡아. 랭킹도 엄청 차이가 나. 그게 기분 나빠서 다른 게임하면 또 그걸 따라 해. 아빠가 게임에서 꼭 나를 눌러. 그럼 난 게임을 멈춰. 그게 아빠야!"


아들 이야기에 한참 웃었다.


"아빠가 승부욕이 장난 아니지. 나도 한 승부욕 하는데 아빠는 못 이겨. 엄마는 동네 산 정도라면 아빠는 거의 산맥 급이야. 첨엔 승부욕이 멋져 보였는데, 살다 보니까 아빤 아직도 엄마를 경쟁대상으로 여겨. 그게 너랑 누나한테도 그런가 봐."


"혹시 나도 두 사람 닮아서 승부욕이 강한 건가? 아빠가 날 따라잡잖아? 그럼 나도 지지 않겠다고 막 집중해. 그러다 몇 번 지고 나면 기분이 나빠져서 더 이상 하기 싫어져. 내가 승부욕이 없었으면 아빠가 나를 따라잡든 말든 계속 게임했을까?"


"그러게... 어쨌거나 아빠가 너 도운 거네???"


"그런가? 암튼 나는 그럴 때마다 아빠가 너무 밉고 싫었어. 왜 아빠라는 사람은 맨날 자기 자식을 이겨 먹으려고 할까. 아빠는 나를 아들로 안 보나 봐. 나를 아들로 보면 좀 봐줘야 되는 거 아냐? 아빠가 맨날 내가 하는 거 다 따라 해서 이기려고 하면 나는 차라리 다른 아빠가 내 아빠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


"속상했나 보네... 근데 너 아빠가 절대 못 따라잡을 거 하나는 이뤘잖아?"


"아~! 키! 맞아. 아빠가 사춘기 때 좀 잘 자고 새벽에 삼촌이랑 신문배달 같은 거 안 했으면 나만큼은 컸을걸? 그런 거 보면 좀 짠하네."




중학생이 180센티가 훌쩍 넘겨버리니 남편은 더 작게 보인다.

늘 까치발을 들고서 부정한다.

"아직은 내가 더 클걸?"

까치발 해도 아들의 어깨를 겨우 넘기면서 말이다.




남편이 아들의 꿈을 들려주는데 위의 대화가 떠올랐다. 어쩌면 같이 놀아주는 아빠가 좋으면서도 서로 부딪힐 때는 그 존재를 말살해 버리려는 마음이 꿈틀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들이 꿈에서 아빠가 죽어 장례식을 치르며 슬퍼했다는 말에 아빠랑 화해하려고 꿈에서부터 미리 준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꿈에서 죽은 아빠를 보고 통쾌하게 여기거나 괜히 웃음이 났다면 둘 사이는 현실에서도 더 멀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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