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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Feb 05. 2024

문득 두려움에 휩싸이는 그런 날이 있다.

관제탑이 보내는 신호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며 부산하게 움직여 각자 알아서 밥 먹고 지각하지 않게 잘 챙겨 나가라고 인사하며 옷을 채 여미지도 않은 채 엘베에 올라탄다.

오늘따라 아무도 안 탔다. 이런 날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옷매무새도 새로 고치고 거울을 보면서 자유롭게 점검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타고 있으면 목례와 함께 바로 경직되어 얼음 땡 놀이 하듯 멈춰 버린다.


전기차를 사고부터는 시동과 출발이 동시에 가능하니 좋다.

바로 연결되는 블루투스에 음악 소리가 나온다. 대부분 발라드 곡이 재생 목록에 저장되어 있어 익숙하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다 회사에 도착한다.

주차를 하는 순간 오늘 일정 중에 중요하거나 놓치면 안 되는 일정이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미리 떠올리면 운전 내도록 방해되기 때문에 주차하고 나서 3분간 차에 머물다 내린다. 전투장으로 들어가기 전 호흡을 고르는 그런 마음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지금까지 급하게 달려오면서도 익숙한 패턴 때문인지 평온한 마음이던 것이 문득 일정을 떠올리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아차! 오늘 연락할 곳이 그곳이구나!'


조금 껄끄러운 사업장이다. 괜히 긴장된다. 지난번에도 잘 마무리하고 나왔다 싶었는데 함께 갔던 직원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클레임을 걸었던 곳이다.


그런 곳이 있다.

전혀 상관없는 일로 꼬투리를 잡아서는 일과 무관하게 면박을 주거나 시비를 건다. 그렇다면 거래처를 바꾸면 되는데 또 바꾸지는 않는다. 꼬박꼬박 일정을 잡아서 거래를 유지한다. 그리고는 또다시 애먼 직원들만 수난을 당하고 온다. 하물며 어떤 직원은 웃는 모습을 봤더니 크라운을 했나 보더라. 치아 색이 고르지 않는 거 보기 좀 그렇더라고까지 한다. 듣는 당사자도 당황스럽지만 해결해 줄 수 없는 말을 듣고 있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뭐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불쾌해진다.


불쾌함을 드러내면 지는 거다.


'우리 직원 치아색도 관찰하셨구나. 어머나! 저는 3년을 같이 일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눈썰미가 대단하시네요! 꼼꼼하게 일 잘하시겠어요. 하지만 그런 말은 저한테만 하신 거겠죠? 그 직원한테는 굳이 말씀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치아색이 고르지 않는 거랑 이 일이랑은 전혀 무관하거든요. 우리한테 소중한 직원인데 괜히 마음 상해서 나간다고 하면 저희도 여기 더 이상 오기가 힘들어지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아니 뭐 꼭 그렇다고 그 사람 치아 색 교정하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그게 유독 눈에 띄니까...'


'아 그럼 저희 앞으로 여기 올 때는 마스크 쓰고 올게요~ 그럼 되겠다 호호호.'


빌어먹을...

어쩔 수 없다.

여기는 나라도 와야지 이렇게 무마된다.

안 그러면 애먼 어린 직원들이 사무실 들어오자마자 폭풍 하소연을 할 테니...


그 사업장이 벌써 3개월이나 지났구나.


깊게 심호흡을 한다. 오늘도 무사히! 그 인간이 퇴사하거나 사업장을 바꾸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문득 두려움에 휩싸이는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가는 중에 갑자기 불길함이 솟구치는 그런 기분에 휩싸이는 날... 곰곰이 떠올려보면 한번 겪었던 불편함이 미리 신호를 울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 어떤 관제탑이 민감하게 신호를 포착해서 울려주는 셈이다. 무턱대고 무시했다가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보니 불시에 찾아오는 두려운 감정이 일어나면 일단 멈추고 본다.

뭐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이런 기분에 휩싸이는 것이지?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필요한 신호인지 불필요한 신호인지 구분이 된다.

필요한 신호에는 그럴만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되고, 불필요한 신호에는 스위치를 끄듯 달칵 내려 버리고 '바이'라고 말해준다.

한결 가볍게 다음 상황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사무실로 들어서며 굿모닝 인사를 나눈다. 나보다 미리 온 직원이 말한다.

'과장님! 우리 오늘 지난번 거기... 연락해야 되는 날이에요!'

울상이다. 지난번에 스타벅스 텀블러 들고 갔다는 이유로 '김치녀'라는 욕을 먹었던 직원이 나보다 더 신호를 포착했구나.


'과장님 이번에도 연락해 주실 거죠? 같이 가 주셔야 돼요. 안 그럼 저희 또 무슨 꼬투리 잡힐지 몰라요.'


'있다가 내가 전화할게. 다른 일정 챙겨!'


우리를 길들이려는 업체 담당자와 그녀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랑살랑거려야 되는 나.

나도 언제까지 이 외줄 타기를 해야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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