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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Feb 06. 2024

불안의 불덩이를 식혀라

이간질로 떠나는 사람들

처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편안하다, 세상 걱정 없어 보인다, 그릇이 크다, 푸근하다, 한결같다는 말로 가정교육을 잘 받았거나 어려서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다 조금 더 친해지는 사람들은 뭔가 깊이가 있다. 진지하다, 깊이 있는 가운데 외로움이 묻어난다. 쓸쓸해 보인다. 허술해 보이는데 똑똑하다, 보기보다 에너지 넘친다, 곁에 오래 두고 싶다고 말한다.

좀 더 친해지는 사람들은 인생 여러 번 산 사람 같다, 재미있다, 유쾌하다, 장난꾸러기다, 숨길 줄 모르냐라고 한다.


왜 다르게 보는 걸까?


그러나 나와 갈등을 겪은 사람은 냉혈한 같다, 소시오패스 같다는 말도 한다. 한때 도반이었던 동료가 내 사주를 보더니 사기꾼 기질을 타고났네, 사이비 종교지도자가 될 팔자다라고도 했다. 이후 그녀가 나를 노골적으로 불신하는 티를 내다가 내 주변 사람과 다투더니 사라졌다. 아마 그녀는 나를 끝까지 사기꾼이 될 사람으로 기억하겠지?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다만 매일이 어제보다는 나은 사람이려니 믿고 산다.




사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에게 어떤 평가를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있던 어떤 씨앗이 나와 부대끼다 상대방이 싹 틔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에는 그다지 상처를 받지 않는 편이다. 내가 사람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장면은 대게 나와 친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직면해야 되는 순간이다. 죽음의 경험이 많다 보니 제법 초연해졌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이별을 경험해야 될 때, 그것도 고의적으로 이별을 경험하게 될 때면 흔들린다.


최근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뜻이 맞지 않아서라고 한다.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한다. 자기를 알기 위해 열심이던 사람이다. 다소 서툰 면도 있지만 매 순간 자기를 세팅하기 위해 공부하고 점검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와 친한 사람이 그녀의 가정형편을 들먹이며 '요즘 걔가 제정신이 아닐 거야. 남편 사업이 망했다잖아. 자기가 돈 벌겠다고 저러는데...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하는 척 흘린다.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남의 가정사를 여기저기 말하느냐.'라고 했더니 '걱정되니까!'라고 한다. 걱정된다라는 이유로 타인의 치부를 드러내며 고립과 소외의 칼날을 휘두른다. 얼마 후 사소한 실수가 일어났다. 바로 그녀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선생님 요즘 가정이 좀 힘드시다더니 정신이 없으신가 봐요!'라고 바로 날벼락이 떨어진다. 상사는 자신의 무한 권력으로 실수 한 동료의 수치심을 일으키는 칼날을 휘두른다.


(이전에 한 명은 계약 해지를 통보받는 과정에서 카카오톡 메시지로 연락받았다고 한다. 몇 달간 사례를 안 주더니 해고다. 카카오톡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있는 장소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여기저기 걱정한다고 떠벌리던 이간질녀가 양심이 찔리는지 몰래 다가가 마음을 달랜다. '쟤(상사)가 자기가 능력이 안되는데 저 자리 앉아 있으니까... 괜히 자기한테 불이익 돌아올까 봐 그런 거다.'라며 혀를 놀린다. 이간질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마음을 털어놓던 그 동료는 결국 계약 해지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화가 난다. 벌써 몇 번 째냐고.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듯 일거리를 안 주면서 사람들이 떠나게 만드는 걸 보면서 '공화국'이 따로 없구나 싶다. 인민재판하듯 끊임없이 평가하는 상사도 사실 이간질녀와 같은 마음 구조를 갖고 있다. 자기의 안위에 위해가 예상되면 다 치워 버린다. 마치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거기서 부화된 뻐꾸기 새끼가 다른 새끼들을 다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뻐꾸기는 집을 지을 실력이 없어서 집을 잘 짓는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이라고 한다. 집을 잘 지은 새의 자식들은 밀려서 떠난다.


1년간 6명이 떠났다.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중간에서 이간질하던 사람의 시기와 질투, 음해에 의해 떠났다. 누군가는 싸우고 떠났고 누군가는 같은 부류가 되기 싫다고 떠났고, 누군가는 아쉽고 속상한 마음으로 슬프게 떠났고, 누군가는 겉보기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의 실망으로 떠났다. 나는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흔들렸다. 내가 그들이 경험한 것을 고스란히 겪어 봤다. 사례가 들어오지 않는데 상담을 이어가야 되는 순간, 호전된 내담자들과 종결해도 되는 시점을 더 늘여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던 심정을 경험했다. 순환이 잘 되면 종결에 대해 부담 없이 긍정 시그널이 나오는 대로 보내면 된다. 그러나 순환이 되지 않으니 수입이 떨어지는 것을 고민하다 양심과 싸우게 된다. 나 역시 그 순간을 경험하다 내 양심에 맞는 선택을 했다. 평소대로 종결했고, 새로운 사례가 안 들어오는 시간이 길어지자 두어 번 언급했다. '선생님만 없는 게 아니니까요!'라며 단칼에 거절하는 상사의 심정에 다시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간질녀에게는 꾸준히 사례가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영향을 받았구나. 나도 영향을 받으니 알겠다. 그런 의미였구나.


이 상황을 계기로 나를 필요로 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내 영역을 확장하기로 했다. 나름 균형을 유지했다. 프리랜서라는 자유로움을 한껏 활용한 셈이다.


무엇이 이곳을 이토록 흔들어 놓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중 발견한 것은 불덩이다. 불안이라는 불덩이다. 각자의 마음속에는 불안의 불덩이가 있다. 누군가는 자리보전(역할)에 대한 불안, 누군가는 수입에 대한 불안, 누군가는 실력에 대한 불안, 누군가는 소외에 대한 불안, 누군가는 버려질 것에 대한 불안... 각자가 다른 이유로 들고 있는 불안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 게 바로 이간질하는 사람이다. 여기저기 이간질을 통해 모두를 흩어지게 만든다. 떠나게 만든다. 하필이면 상사와 똑 닮은 게 막내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닮아 있으니 그 가운데 사람들은 다 떠난다. 나 역시 덕분에 떠나게 됐다. 그녀들의 불덩이가 더 크게 타오르기 전에 떠나기로 했다.


심리상담사로 혼자 일할 때가 좋았다.

여러 명이 일하는 곳에서 기대했던 지적교류나 정보교류는 없이 도토리 키재기 밖에 안 되는 서열 싸움과 파벌과 이간질로 분탕 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다. 그리고 슬펐다. 인품 좋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니 나도 이곳이 재미없게 느껴진다.


얼마 전 새로 오픈하는 센터에서 상담실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아직 오픈 전이라 여러 가지 할 일이 많다. 인테리어는 물론 인원세팅부터 영업전략, 홍보 등 내 호기심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몇 주간 재미있는 경험을 하며 이전의 불쾌함을 해소하고 있다.


불안의 불덩이를 안고 있는 그녀들이 집을 다 태울까 봐 염려가 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남의 집이 타든 말든 신경 끄자라는 보복의 마음도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또 양심에 따라 대표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 판을 제대로 좀 읽으라고... 적나라하게 말하자니 내 경험이고 주관이다. 대신 신호만 보냈다. 하지만 상대가 읽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가게 새로운 곳에서는 이런 불덩이가 활활 타오르지 않도록 궁리해 본다.

어떤 중재자로 존재할지 궁리하는 시간이 씁쓸하면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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