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88올림픽 이후, 세상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주거 문화였다. 어릴 적 나는 똑같이 생긴 골목길의 집들 사이에서 살았다. 때로는 주인집으로, 때로는 셋방살이로. 집의 위치나 구조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 집 안에 ‘누가 있는가’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 ‘할머니’가 있는 시절은 분명히 달랐다.
할머니가 계실 때, 우리 집은 넉넉했고, 인정이 있었으며, 이웃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외가에서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허락한 배경에도 그 안정감이 있었을 것이다. 동생이 많았던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집을 왔고, 나는 그 시대의 ‘취집’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그녀의 처지를 어렴풋이 이해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새엄마는 나에게 무심했고, 나는 서서히 우리 집에서 '지워지는 사람'이 되었다.
저녁 5시에서 6시. 내 심장은 정해진 알람이라도 울리는 듯, 심박이 툭 하고 떨어졌다. 온몸이 무거워지고, 무력감이 퍼졌다. 그 무력감은 공상 속 장면으로 떠올랐다. 마블 영화 속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면 생명체가 흩어져 사라지듯, 친구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집으로 사라졌다. 모래 놀이를 하던 공사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조용해졌고, 나는 혼자 남았다.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겨울은 더했다. 해가 짧은 계절의 다섯 시는 마치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사라질 시간을 내 심장은 미리 알았다. 쿵, 하고 내려앉는 심장의 소리와 함께.
한때 상담을 받으며 이 마음을 꺼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상담자는 내 말에 실질적인 공감을 주지 못했다. 현실 치료의 관점으로 다가온 설명은 ‘좋은 세계’에 대한 조언처럼 들렸다. 공허함과 헛헛함의 실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 마음은 뜻밖의 순간 다시 떠올랐다. 친구들과 제주 여행을 갔던 어느 평일 오후. 숙소 근처를 산책하던 중, 갑자기 마음이 아릿해졌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데도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석양이 지는 길 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데, 이렇게 열심히 가야 한다니!
그 울음은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어떤 마음의 분출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기를 바랐던 간절함, ‘누군가의 집’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 외롭고 무력했던 그 시간들에 대한 통곡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새엄마는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의 부름’을 받고 하나둘 사라질 때, 나는 힐끗힐끗 집 쪽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어떤 날은 교회 강대상 밑에 숨어 잠이 들기도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나도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다. 아빠는 나를 찾아와 소리쳤다.
“때 되면 집에 들어와야지! 여기서 자고 있으면 어쩌냐!”
그 순간, 옆에 있던 새엄마를 보며 말문이 터졌다.
“다들 집에서 부르는데… 나는 아무도 안 부르잖아. 나 할머니한테 갈래.”
그날 이후에도, 새엄마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내 이름은 그녀의 입에 거의 오르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 길은 늘 낯설고 차가웠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존재감을 잃어갔다.
제주에서의 산책길은 그 오래된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다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그날, 내 안의 외로운 아이가 불쑥 나타났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지만, 함께 걷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마음을 데워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심리 공부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었다. 왜 나는 저녁만 되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는지, 왜 모든 것이 사라진 듯한 공허함에 휩싸였는지, 왜 ‘나를 부르는 사람 없음’이 이토록 큰 슬픔으로 남았는지. 나는 내 속에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야 했다.
그 여행이 벌써 10년 전이다. 이후로 저녁 시간의 헛헛함은 많이 줄었다. 친구들과 숙소로 향하던 그 산책길 어귀에서, 공사장에 홀로 남아 있던 11살의 내가 조금은 떠나준 것 같다. 그 아이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냉장고처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온탕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은 내가 밥을 짓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 결국, 나를 부르지 않던 세상을 지나, 나는 이제 내가 만든 ‘따뜻한 세계’로 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