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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Feb 14. 2024

원하는 도움을 알아가는 것_어른이 되는 과정

내가 원한 건 해결이 아니야

길을 가던 중 어떤 아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다.

가서 살펴보니 저 멀리 가방이 떨어져 있다.

울고 있는 아이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 서서 그 아이의 울음 섞인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전하고 있다.

지나가던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아이의 가방을 주우러 간다.

살펴보니 가방에서 떨어진 물건도 보인다.

보이는 대로 대충 주워 담아 울고 있는 아이 옆에 가져다주고 다시 가던 길을 떠났다.


그날 저녁 울고 있던 아이와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와 도둑이라고 한다.

 그 가방에 거액의 돈이 든 봉투가 들어 있었는데 봉투째 사라졌다고 한다. 가방을 가져다준 내가 그 봉투를 가로챘다며 물려내라고 한다.


"가방 주워 담을 때는 그런 봉투 못 봤는데?"


"아니야! 니가 내 허락도 없이 내 가방을 마음대로 만졌잖아! 누가 내 가방에 손대래?"


"내가 가방 정리 할 때는 봉투 같은 거 못봤다고!"


"네가 마음대로 가방을 만진 것부터가 잘못이야. 왜 남의 가방에 함부로 손댔냐고!"


일이 커졌다. 하는 수 없이 경찰서로 가서 근처 CCTV를 살펴보기로 했다.


다행히 가방을 정리하던 내 모습이 고스란히 찍힌 화면이 있다. 화면 속에서 나는 의심받을 만한 행동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 화면이 없었다면 영락없이 당할 뻔 한 것이다.


화면을 돌려 보던 경찰관이 말한다.


"도와주는 것도 허락받고 도와줘야지. 묻지도 않고 덥석 남의 물건 손대면 괜히 좋은 마음먹고도 오해받아. 다음에는 조심해!"라고 한다.


집에 들어와 한참을 울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남을 어떻게 돕지?'


그 후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봤다.


'길 가다 누가 앉아서 울고 있는데 그 사람은 주변에 둘러 싸여 위로를 받고 있어요. 근처에는 가방 하나가 떨어져 있어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러 명을 통해 답을 들으며 충격받았다.


대부분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한단다.

가방은 그 사람이 알아서 정리하도록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구나.

가방에는 손대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그러나 나는 몰랐다.


이후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모습을 보게 되면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관찰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봤다.

그 후 그들을 따라 했다.


'괜찮니?"

"무슨 일이야?"

"많이 속상했겠다."

"이런... 쯧쯧... 힘내!"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씩 웃는다.

들어줘서, 응원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그리고 멈추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힘이 들면 잠시 쉬고 싶은 것이지, 누군가 자기 일을 대신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구나.'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이 자기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을 '돕는다'는 이유로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곤경에 처하면 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주변을 말끔히 치워 놓던 대상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보살핌은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다.

나에게 든든한 보호자로 기억되는 어른들은 대부분 내가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

아이에게 기억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힘들 때 해결해 주는 어른이 참 어른이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성장하다 보니 모든 것을 떠먹여 주는 것이 관심이고 사랑이 아님을 배웠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마음도 타인의 허락이 없이는 공격이 되고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이다.




나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거나 방해했던 적이 많았다.

직접 공부를 도와주기도 하고, 필요해 보이는 물건을 선물이라며 건네기도 하고, 상심한 표정을 보면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다. 그렇게해야 관계가 돈독해지는 줄 알았다. 나의 보호자들과 맺던 관계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했던 행동이었다. 그러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타인을 원망하고 내가 피해자인 것 처럼 속상해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내가 한다고!'라는 서너 살짜리 꼬마의 앙칼진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스스로 할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 하다가 도와 달라하면 기꺼이 도와주는 것, 잘했을 때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것이 한 인간의 자립을 존중하고 키워 내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몸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만, 마음은 그제야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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