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날, 꿈을 꾸었다.
현실에서 울지 못했던 내 마음이 그곳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꿈속의 나는, 장례를 마치고 목욕탕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평소보다 훨씬 오래, 천천히 씻었다. 이상하게도 그 목욕은 개운했다. 몸의 피로만이 아니라 오래 묵은 감정까지 씻겨 나가는 느낌.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정서의 각질들이 부드럽게 벗겨지는 듯했다.
목욕을 마친 후, 나는 옷을 입으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매번 입던 그 옷이 아니었다. 누군가 새 옷을 건넸다. 낯설지만 어쩐지 익숙한 옷. 소매를 통과할 때의 감촉이 좋았고, 입는 순간 내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옷을 입은 나를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이제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상하게도, 나는 늘 같은 옷을 반복해서 입고 살아온 느낌이었다. 익숙해서 편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무기력하게 고착된 자아, 변화 없는 삶의 패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이었다. 낡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고, 새 옷을 받아들이는 꿈. 그것은 마치 내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는 뜻이었다.
“이제 그만 과거를 벗어도 돼.”
외할머니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절대적 수용의 인물이었다. 기댈 곳이 없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울곤 했다. 그런 존재가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그림자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정서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나는 여전히 ‘외할머니의 손녀’로서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그녀의 장례를 마치고, 나를 씻고, 새 옷을 입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는데도, 나는 그 의식을 스스로 해낸 것이다. 마치 내 무의식이 나에게 준비한 의식 같았다. 하나의 시대를 보내고, 이제는 내 발로 서야 할 때라고.
그 새 옷을 입은 이후, 나를 얽매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여전히 외부의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내 안의 감각이 달라졌다. 몸이 가벼워졌고, 마음이 조금은 덜 무거웠다. 이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 내 삶의 국면이 바뀌는 징후였다.
돌아보면 우리는 많은 옷을 입고 산다. 사회적 역할이라는 옷, 기대에 맞추는 옷, 혹은 스스로가 정한 ‘나 다움’의 틀.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옷을 벗고 진짜 내 피부 위에 닿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과거의 보호막을 내려놓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진실한 옷. 그것이 바로 자기를 향한 여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삶에 새 옷을 입혔다. 그건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삶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