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도 날씨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사무실의 적당히 차갑고 건조한 공기, 사람들의 타이핑 소리, 여기저기 흩어진 서류들.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긴장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기관의 감사가 있는 날이었다. 내 업무 서류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오래된 긴장과 불편함이 맴돌았다.
15년 전 신입사원이었을 때부터 나는 옳고 그름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남들이 실수하거나 잘못된 기준을 사용할 때면 즉각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애썼다.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정의롭다는 신념이 어우러져 나는 종종 주변과 마찰을 빚곤 했다. 감사가 끝나면 사라지면 동료들을 보면서 더욱 민감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감사와 관련해 여러 경험이 쌓이면서 내 업무의 정확성과 효율성은 인정받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딘가 서먹서먹하고 불편해지곤 했다. 가끔은 동료들의 미묘한 시선 속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모든 것이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때로는 옳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는 것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관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기에, 자연스레 내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의 감사 준비 과정에서 이런 변화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우리 기관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담당자가 자신만의 기준을 강력히 주장하며 직원들의 서류를 번거롭게 만들었다. 그녀는 타 기관에서의 경험을 내세워 자신의 말만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 내 서류에도 그녀의 지적이 들어왔지만, 나는 조용히 내가 알고 있는 정확한 기준을 유지하며 서류를 완성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즉각 반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녀의 잘못을 명확히 알려 내 주장을 관철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용히 나만의 방식으로 준비를 마쳤다. 논쟁 대신 실질적인 결과로 나를 증명하기로 했다.
감사 당일, 모든 것이 드러났다. 담당자가 주장한 기준대로 작성된 서류들이 줄줄이 지적받았고, 내 서류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정받았다. 감사관은 내 서류를 기준 삼아 다른 서류들을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그 순간 나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통쾌함을 느꼈다. 말없이도 결과로 내 실력을 입증하는 이 방식이 낯설었지만, 만족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씁쓸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토록 믿었던 기관장조차 내 의견보다 담당자의 강한 주장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기관에서도 꾸준히 해왔다고 하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하는 기관장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의 본심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기관장은 결국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경험과 근거를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해도,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면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는 현실이 씁쓸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일을 통해 또 하나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내 신뢰는 내가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관장의 신뢰나 주변 사람들의 인정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나 자신이 나의 바운더리를 명확히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외부의 평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게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타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소망이 무의식 속에서 강하게 작동했고, 그것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곤 했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증명하려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소망을 선택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의 인정을 절실히 원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내 삶을 훨씬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조직에서 튀지 않고 살아남으라는 암묵적인 압박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날을 세웠지만, 지금은 적당히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만 타인의 필요에 부응한다. 내적 자유로움을 유지하며 실리도 챙길 줄 알게 된 것이다.
오늘 감사가 끝난 사무실에서 혼자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변했고, 이 변화는 내게 좋은 것이었다고.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 한쪽에 있던 긴장감은 서서히 안도감으로 바뀌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