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하루를 별일 없이 보내는 것이 목표였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때맞춰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고, 잠드는 일상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렇게만 살면 괜찮은 사람이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나에게 '무의식'은 먼 이야기였다. 나는 내 의지로 결정하고, 나의 선택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꿈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피곤한 날 나타나는 무의미한 영상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몇 해 전, 나는 매일같이 한 장면의 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절벽을 맨몸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새카맣고 가파른 바위는 손톱이 부러지고 피부가 찢겨나갈 정도로 거칠었다. 숨이 차오르고, 팔이 후들거렸다. 간신히 절벽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한 여자가 나타나 내 손을 짓밟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추락했다. 시지푸스의 바위처럼 나는 맨 몸으로 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저주에 걸린 것 같았다. 떨어진 김에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깨고 나면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마음은 오래된 상처처럼 저려왔다. 꿈이라고 넘기기엔 너무나 생생했고, 그 느낌이 현실에도 그대로 남아 나를 휘감았다.
이 악몽은 특별한 징조도 없이 나타났다. 난 점점 지쳐갔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꿈이 계속될까?" 처음엔 그냥 넘겼지만, 점차 마음 한구석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너, 뭔가에서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살면서 나는 잘 참는 사람이었다. 억울해도 웃고, 아파도 웃고, 피곤해도 웃었다. 나약하다는 말을 듣기 싫었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감정을 곧잘 삼켰고, 화가 나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냥 내가 참으면 되지’란 말이 나를 지탱하기도 하고 동시에 좀먹기도 했다.
꿈속 절벽은 어쩌면 내가 참는 삶, 감정을 밀어내며 쌓아 올린 경계였는지도 모른다. 기어오르는 건 내 생존의 방식이었고, 여자는 그 경계를 넘어가려는 나를 짓밟는 또 다른 나였다. 무의식의 나.
하루는 꿈에 변화가 생겼다. 또다시 절벽을 오르고 있었고, 여자가 어김없이 나타나 내 손을 밟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떨어지는데, 몸에 밧줄이 묶여 있었다.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고 중간에서 멈췄다.
처음이었다. 꿈에서 안정감을 느낀 건.
꿈은 계속됐다. 그리고 매번 밧줄은 나를 보호했다.
그날 이후 나는 문득 내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이상하게도 꿈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네가 모르는 네가 있다’고. 그건 책이나 강연으로 들었던 자기이해나 마음챙김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감각, 낯선 경험이었다.
나는 상담실을 찾았다. 처음엔 조심스럽고 민망했지만, 꿈 이야기를 꺼내자 상담자는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 “그 여자는 당신 안의 억압된 감정일 수 있어요. 밧줄이 등장한 건 무의식이 당신을 도와주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그토록 단단히 쥐고 있던 나 자신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절벽 꿈을 꾼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어느 날은 끝내 그 여자가 사라지고, 내가 절벽 위에 선 꿈을 꿨다. 처음으로 바닥이 아닌, 내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는 꿈. 그 순간 눈물이 났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버텼고, 올라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올라왔는가'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동안 난 너무 바빴다. 남들처럼 살아야 했고, 열심히 살아야 했고, 성과를 내야 했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 모든 압박이 절벽이었고, 나는 그 위에서 한 발짝도 쉬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무의식은 단지 숨겨진 영역이 아니라, 내 삶을 균형 있게 만드는 또 다른 나라는 것을. 의식만으로는 살 수 없고, 감추고 밀어낸 감정들이 결국은 꿈이 되어 내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가끔 허공에 묻는다.
“왜 그 여자는 내 손을 밟았을까?”
그리고 그 답은 이렇게 돌아온다.
“너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추게 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부수는 줄도 모르고 계속 달렸던 날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멈추는 용기가, 나를 구한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절벽을 오른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하지만 꼭대기에서 나를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적인지, 나인지, 혹은 나를 다시 살게 할 누군가 인지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그 길을 오르다 보면 언젠가 내 무의식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내 안에 나조차 모르는 생명력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길 끝에 있는 건 ‘정상이 아니라 통합’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때로는 올라가고, 때로는 쉬고, 때로는 밧줄을 확인하며. 그리고 가끔은, 내 안에 있던 그 여자가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느낀다. 이제는, 그녀도 나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