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원 자전거 사건과 세계에 대한 태도
내 삶은 ‘해석의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다. 똑같은 사건도, 어떤 날은 실패로 해석되고, 어떤 날은 기적으로 읽힌다. 같은 감정도, 어떤 시점에서는 고통이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탄생의 징후로 다가온다. 삶은 언제나 ‘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살아 있는 감각’으로 느낀 것은 다섯 살 무렵의 일이었다. 나는 300원을 손에 쥐고 자전거를 사러 갔다. 돈의 가치도, 세상의 구조도 모르던 아이가 오직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진심 하나로 무작정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은 놀랐고, 아빠에게 전화했으며, 아빠는 허둥지둥 달려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빠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정말 자전거를 사주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은별이는 뭐든 할 줄 아는 아이지."
그날 이후, 내 무의식에는 하나의 해석이 새겨졌다. ‘세상은 내가 진심을 다하면 응답한다.’ 300원은 돈이 아니라, 진심의 상징이었다. 이후에도 내 인생은 늘 부족한 자원, 불충분한 정보, 비현실적인 열망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길을 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시도할 자격’을 허락한 나의 태도였다.
상담실에서 내담자들과 만나다 보면, 어떤 이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미 실패를 예감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예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자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300원 자전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처음으로 상상해본다고 했다. “혹시 나도, 해볼 수 있을까요?”
삶은 결국 태도의 리듬으로 구성된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가능성’을, 또 다른 이는 ‘제한’을 먼저 본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 양육자의 반응, 사회적 학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어떤 리듬을 선택할 것인가’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두렵다. 실패, 거절, 무시, 비웃음. 그러나 그 모든 감정 너머에, 여전히 그 다섯 살 아이가 있다. 300원을 쥐고, 자전거 가게 문을 열던.
그 아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 나는 매일같이 무언가를 써서 세상에 보낸다. 때로는 아무런 응답이 없고, 때로는 비난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300원의 리듬, ‘부족하지만 진심인’ 존재의 리듬이다.
삶은 해석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리듬을 만든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해석자들과 대화한다. 은별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네 마음을 몰라줘도 괜찮아. 네가 알면 돼.” 나현은 정리한다. “그 사건은 외면당한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었어.” 본캐는 말한다. “내일도 쓰자.” 그리고 꼬마는 웃으며 외친다. “우리 또 가보자, 자전거 타고!”
나는 이제 안다. 나의 서사는, 내가 어떤 리듬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시 쓰인다. 그리고 그 리듬은 언제나, 가장 처음의 진심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내가 전부를 내어주었을 때, 응답했다. 그 전부는 300원이었지만, 나에겐 모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