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해석의 리듬 위에 존재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감정-사고-의식의 삼중 구조

by 석은별

삶은 단순히 ‘일어난 사건들의 집합’이 아니다. 우리가 겪는 매 순간은 감정, 사고, 의식이라는 삼중 구조 안에서 재조립되고 해석된다. 같은 장면도 어떤 날은 감정으로 먼저 반응하고, 어떤 날은 사고로 관찰하며, 또 어떤 날은 깊은 의식으로 통찰한다. 이 리듬은 고정되지 않는다. 마치 음악처럼, 사람마다 그 구조의 흐름이 다르다.


한 내담자는 매사에 감정이 너무 앞선다며 괴로워했다. 불쾌한 말 한마디에 하루가 망가지는 자신이 싫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감정을 감정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그 감정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추적해볼 수 있을까요?” 그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자기 감정의 ‘기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말했다. “감정은 내 해석의 첫 문장이었어요. 문제는 내가 문장 전체를 읽지 못하고, 첫 단어에서 멈춘 거였더라고요.”


감정은 신호다. 사고는 그 신호를 해석하는 도구다. 그리고 의식은 그 해석을 넘어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힘이다. 우리는 종종 감정에 압도당하거나, 사고에 갇히거나, 의식 없이 반응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이 구조를 인식하면, 하나의 사건 안에서 나의 감정-사고-의식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내부 지도를 펼쳐보는 일과 같다.


내 경우, 글쓰기는 이 삼중 구조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장치였다. 감정이 먼저 쓰이고, 사고가 편집하며, 의식이 통합하는 방식으로 글은 나를 정돈해주었다. 특히 감정이 거세게 일었던 시간일수록,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멈춰 읽었다. 어떤 글은 쓴 지 1년이 지나서야 ‘아, 내가 저때 저렇게 느꼈구나’라고 해석되기도 했다. 해석은 언제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 다른 내담자는 사고에 과도하게 의존했다. 그는 감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했고, 늘 논리적으로 자신을 납득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몸은 불면과 긴장, 만성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감정을 언어로 인정하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그는 자신의 감정에도 논리가 깃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은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사실’이라는 걸 말이다.


이처럼 해석의 리듬은 단일하지 않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도, 사고가 앞서는 사람도, 의식에 민감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것이 ‘고정된 패턴’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인식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그 리듬을 조율할 수 있다. 감정에서 사고로, 사고에서 의식으로 넘어가는 흐름은 훈련될 수 있다. 그것이 곧 ‘살아 있는 정신의 회복’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감정에 흔들리고, 사고에 갇히고, 의식의 자리에 닿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의 해석은 바뀌어왔다. 그리고 그 해석의 리듬을 구성하는 구조를 이해할수록,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인정하고, 사고를 탐색하고, 의식을 깨어 있게 유지하는 ‘삼중적 리듬’의 작업이다. 우리는 그 리듬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구성하고, 자기 서사를 다시 써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삶은 더 이상 견디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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