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선생도, 나도 아닌 하루

Part 3. 워킹맘 교사

by 석은별

인물 소개와 에피소드 배경

이름: 수진(가명) / 39세 / 여 / 중학교 교사, 두 아이의 엄마


수진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출근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과 후 상담, 학부모 전화, 행정 업무까지 끝내고 나면 저녁 6시를 훌쩍 넘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오늘은 애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 “오늘 상담은 좀 뿌듯했어” 같은 생각이 잠시 떠오르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모든 게 사라진다.

“엄마, 오늘 저녁 뭐야?”
“왜 또 반찬 그거야?”
남편은 핸드폰을 보며 “고생했지” 한마디 없이 방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싸운다, 소리친다, 거실은 엉망이다.

그날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앉았을 때 갑자기 속에서부터 문장이 하나 올라왔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사는 걸까.”그 말을 삼키지 않고, 일기장에 적어보기로 했다.




1.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왔는데 가족 누구도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았다. 결국 저녁과 집안일까지 도맡고 나니 허무함이 몰려왔다.


2. 기록 전 주요 감정 백분율

억울함 30%

소진감 25%

짜증 15%

외로움 15%

무가치감 10%

체념감 5%

3.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학교에선 아이들 돌보고, 집에선 가족 돌보고, 나는 도대체 누구한테 돌봄을 받는 걸까. 가끔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무섭고 극단적인 생각은 아니지만, 그저 누가 나 좀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누구의 기대도 받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있고 싶다. 이대로는 버틸 수가 없다.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4. 활용한 기법은 무엇인가요?

감정 명명: 억울함, 소진감, 외로움 등 명확히 언어화

자기 인식 문장 시도: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를 기록

감정 무시 중단: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직접 쓰기 시도

5. 새로운 생각은 무엇인가요?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삶’의 기준을 잊은 것 같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선생님 역할은 충실히 해도 정작 나 자신으로서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내 삶이 남을 위한 역할 수행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조금씩 나를 다시 불러내야 할 것 같다.

6. 도움이 된 점은 무엇인가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써보니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명확히 느껴졌다. 내가 지금 힘든 건 일이 많아서만이 아니라 ‘아무도 내 수고를 보지 않는다’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걸 이렇게 써보니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알아봐 줄 수 있다는 위안이 생겼다.


7.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을까요?

“오늘도 참아낸 너에게 고맙다고 말해줘. 돌봄의 무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너는 이미 대단한 사람이야.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살아도 괜찮아.”

8. 기록 후 주요 감정 백분율

수용감 25%

여운감 20%

억울함 15%

평온감 15%

자기 연민감 15%

(체력적) 피로감 10%

9. 일기 쓰기 전과 후의 변화

기록 전에는 허무함과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은 그 감정들이 말이 되면서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나 자신이 처음으로 알아준 느낌이다. 아직 해결된 건 없지만 오늘은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를 위해 쓴 하루의 마지막 한 줄이 오늘 하루의 유일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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