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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Apr 09. 2024

내게 '기록하기'의 기능은...

새로운 브런치 북

브런치의 생태계를 잘 모른다.

누군가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도 하고, 삶의 가치가 형성되었다고도 하는데 내게는 생소할 뿐이다.


솜씨 없지만 글을 쓰려고 애쓰고, 뭔가 기록하려 하고, 가급적이면 통찰과 관련된 내용으로 풀어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그림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궁극적인 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함이다.


복잡한 심경을 어떤 형태의 글로도 풀어내고 나면 베베 꼬인 실타래가 툭 풀리는 듯한 느낌을 자주 겪었다.

마치 혈관 속 어느 구간이 꽉 막혀서 피가 잘 돌지 않는 것 같다가 무언가 지나가면서 혈관 벽을 다 치워낸 그런 시원함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불행을 기원하다 보면 내 속에는 악마가 있는 걸까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의 결이 다 존재한다고 하지만, 나의 나쁜 마음의 결은 악취가 나고 썩어서 흐물흐물 거리는 것이라면, 좋은 마음의 결은 맑은 하늘에 한점 떠 있는 구름처럼 어떤 자극에도 살랑거리며 유유 자적 하는 그런 상태와 같이 상반된다.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고, 누군가 나를 일부러 훼방 놓는 것 같고, 끊임없이 핑계 대면서 내가 설 자리를 좁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져서 괴로웠다.

내가 원망하는 마음이 투영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투영된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세상을 둘러보았다.

나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밀어내는 한 사람을 보면서 측은함이 밀려온다. 그토록 나를 신경 쓰고 전전긍긍하면서 초췌한 모습을 보니 전날의 괘씸함은 지나가고, '넌 역시 어쩔 수 없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괜찮아 지기를 바랐던 마음은 내가 설정한 것임을 발견했다. 상대방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부여해서 그 행동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으니 나의 마음도 뒤틀리고, 상대방도 나로 인해 괴로워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부여한 기준을 지워 버리고 그냥 한 인간으로 바라보니 그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겉이 번지르르 하지만 속은 악취가 진동하는 내 나쁜 마음의 결과도 닮은 모습. 자신도 이러거나 저러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자니 '그만해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쩌면 그만하라는 말조차도 도전으로 받아들이겠지?


나는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을 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을 받아들이면 세상 살기가 편하다.


반대로 나는 할 수 없지만, 상대방은 할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면 세상 살기가 편하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볍게 하고, 하지 못하는 것은 안 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없으니까 상대방도 못하게 방해하거나, 내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대방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서로를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해서도 안 되는 행동이고, 부부가 서로의 배우자에게 해서도 안 되는 행동이다.

더욱이 직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나 지인 간에도 그러한 기대는 서로에게 올가미가 될 뿐이다. 움직일수록 더욱 조여 오는 올가미 말이다.



마음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에고의 목소리에 귀를 내어 주되, 의견은 내어주지 않는 것.

오늘의 발견이다.


그간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에고의 목소리에 끌려 들어가 '그래그래' 맞장구치며 의견까지 내다보니 온통 판단하고 평가해야 되는 상황 밖에 안보이더니, 막상 '그건 니 목소리일 뿐 내 의견은 아직이야.'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무겁던 어깨가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조여오던 목구멍이 넓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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