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라 함을 신적인 존재, 어떤 거대한 힘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보면 어떤 원리가 보인다.
그러니까 자연스럽다고 하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그에 맞게 흐름을 타는 사람을 하늘이 돕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욕구와 욕망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사념체를 만들고 현실처럼 착각해 경쟁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원하는 것이 나타날 때의 강렬한 기억에 매료되어 원하는 것을 더욱더 강하게 얻기 위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쉽게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하늘이 돕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쩌면 흐름을 잘 읽고 이치를 알아 그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날이 더우면 가벼운 옷을 입고 날이 추우면 여려 겹의 옷을 입어 추위를 막고
배가 고프면 너무 허기지지 않을 시점에 배를 채우고, 배가 부르면 적당함을 알고 멈추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있다! 많다. 누구나 그렇게 하늘이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함이 없이 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것의 현상이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흘러갈지를 한걸음 한걸음 같이 내디디면서 감을 잡는 사람이 있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와 바람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보겠지만, 근처에서 비를 피할 장소를 찾거나, 급하게 우산을 산다거나, 평소에 우산을 가져 다닌다거나 비를 기꺼이 맞으면서 가는 사람이 있다.
비가 그치면 그치는 대로 그에 맞춰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자연의 이치를 잘 따르는 사람을 보면 다소 대중적이지 않는 모습에 기이하게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부분도 살펴보면 오히려 자연의 이치에 높은 가치를 두고서 현실 세계의 변화를 적응하지 못하고 관념에 잡혀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들이 자연의 이치에 따른 삶을 산다고 해서 하늘이 돕는 사람일까? 언뜻 보기에는 그렇지만 길게 보면 아닌 것 같다.
하늘이 돕는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알고 흐름에 따라 맡기듯이 살아가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직시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배가 좀 부르지만 내 눈앞에 새로운 먹을 것이 보이면 한 번쯤 맛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않을까?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맛있는 요리가 어쩌면 앞으로 절대 못 먹을 것 같은 요리임을 알면서 거부하는 마음으로 물려 버린다면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선택일까?
그렇다고 요리를 허겁지겁 먹으라는 뜻은 아니다. 한입 맛을 볼 수 있고, 맛있으면 조금 더 먹어보고, 맛있어도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맛을 기억하는 것이 하늘이 돕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처음이라는 이유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만약 내 앞에서 위험한 상황이 처음이라고 해서 그것을 경험해 보겠다는 이유로 괜히 불구덩이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독약임을 알고서도 목마르다는 이유로 벌컥벌컥 마셔 놓고 죽음의 순간 독약을 원망하는 것과 같다. 독약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독약을 갖다 놓은 사람도 잘못이 없다. 일부러 독을 태워 죽이려고 했으면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되겠지만, 아무도 권하지 않은 독약을 스스로 목마르다는 이유로 먹어 놓고서는 독약을 탓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어쩌면 나의 삶에도 이런 패턴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의도는 갖고 있되 과하게 힘을 실어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더라도 그대로 흘려버리고 지금-이 순간에 다시 머무르는 태도를 가진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하늘이 돕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들었던 함이 없이 되게 하라...라는 말이 바로 하늘이 돕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 하늘이 돕는 사람이라 함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현실을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며칠 동안 왜 그리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 틀렸나 싶더니 내 마음에서 억지 쓰는 에너지가 온몸을 돌고 있었구나. 이렇게 발견한 것이 오랫동안 기억되기 위해서는 두서없는 이런 글이라도 남겨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