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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버리는 나

청소가 취미가 되기까지

by 석은별

'엄마! 또 내 책상 정리했어? 내 물건에 손대지 말랬지!'


'내가 너 책상 정리 안 하면 다 버린다고 했지!'


'아니. 제발 남의 물건 좀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내가 엄마방에 있는 거 다 갖다 버리면 좋겠어요?'


'그렇게라도 네가 내 방 청소할 일이 있을까?'


'아~~~ 악! 진짜 짜증 나! 나가요!'




여러 스트레스해소 방법 중 하나가 '청소하기'다.

이 청소에는 정리정돈, 찌든 때 닦기, 버리기가 포함된다.


이 청소가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취미생활이 된 계기는 오래 전의 집단상담이다.


누군가 화가 나면 운동을 한단다. 나는 그 사람이 하는 운동을 따라 할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 화가 나면 책을 읽는단다. 나는 그나마 책을 좋아하지만 화가 날 때 읽지는 않는다.

누군가 화가 나면 음악을 듣는단다. 나는 음악으로 스트레스가 잘 풀리지 않았다.

누군가 화가 나면 명상을 한단다. 그 당시 내게 명상은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명상을 하지만 화를 누그러트리기 위한 명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명상은 있을 수 없다. 다만 호흡을 하겠지.

누군가 화가 나면 영화를 본단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화를 누그러트린 적이 없다. 영화를 고르면서 더 화가 났다.

누군가 화가 나면 여행을 한단다. 나는 집콕을 좋아하지 돌아다니는 것에 별 즐거움을 느낀 적이 없다.

누군가 화가 나면 드라이브를 한단다. 내가 화가 날 때 드라이브 했더니 딱 죽기 좋겠다 싶었다.

누군가 화가 나면 글을 쓴단다. 나는 글을 쓰니까 화가 더 올라왔다.

누군가 화가 나면 청소를 한단다. 나는 화가 나면 널브러져 있는데 청소를 한다고? 갑자기 반박할 게 없었다. 해보자 싶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청소가 십 수년째 이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스텐 냄비를 깨끗하게 닦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와 후드의 찌든 기름을 다 제거하고 나서 반짝 빛이 나는 주방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옷을 정리하며 오랫동안 입지 않거나 낡은 것들을 버리고 나서 빈 공간을 보니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물건이 너저분한 게 싫어서 전부다 서랍 안에 버리다시피 치우는 습관이 있었는데 서랍 속을 한 칸씩 정리하다 보니 마음도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청소하니 내 삶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청소하는 걸 못마땅해하는 건 가족들이다.


'엄마! 이러다 우리까지 맘에 안 들면 버리는 거 아님? 아 진짜 내 물건엔 손대지 마요!'


'넌 제발 나한테 좀 물어보고 버려. 내가 필요해서 둔 건데 왜 네 맘대로 버려?


'엄마! 내 거 손대면 나도 엄마 거 다 버린다!'





버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우리 집에 특별한 물건이 있다.

바로 사무실용 파쇄기다.

이사하던 날 아저씨들이 물었다.


'뭐 하시는 분이시길래 집에 이런 기계가 다 있죠?'


'다른 집엔 없나요?


그 파쇄기에 종이를 넣고 갈아 버릴 때의 기분은 아주 통쾌하다.

기억도 그렇게 갈아버려 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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