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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기 싫어서 돈 벌 거야

좋아하는 건 잘 모르지만, 싫어하는 건 요리!

by 석은별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의, 식, 주라고 하는데 나는 이 중에서 '식'에 대해서 만큼은 나와의 궁합을 파악한 것 같다.


'난 요리가 싫다. 잘 먹는 것도 별로고, 새로운 것을 먹기 위해 줄 서는 건 더욱 별로다. 특히 음식 하는데 시간을 쏟는 것은 더욱 별로다.'


입고, 사는 건 서로 간에 갈등이 그렇게 깊었던 경험이 없는데 비해 먹는 것으로는 좋은 기억도 많지만 끔찍한 기억도 많기에 할 말도 참 많다.


어쨌거나 최근 내린 결론은 '요리하기 싫어서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다짐이다.




먹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결혼 이후였을 것이다.

결혼 전에는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서는 욕구가 없었다.

어떤 음식을 더 먹고 싶어 한다거나, 못 먹어서 한이 맺힌다거나,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 게 아니었다. 먹는 것에 대해서 까다롭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그렇다고 알레르기가 있어서 피해야 되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몇몇 기억은 음식에 대한 향수도 있다.

내가 아플 때 할머니가 쑤어준 흰 죽.

그리고 잣, 땅콩, 소고기, 야채, 김치, 들깨 등등으로 먹었던 기억은 훈훈하다.

할머니나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도토리를 직접 따서 묵을 쑤어준다거나, 집에서 맷돌을 돌려 두부를 만든다거나, 하루종일 할머니 따라서 산나물을 캐서 쑥떡도 해 먹고 나물반찬도 가리지 않았다거나 먹거리에 대한 좋은 기억도 충분하다.

아련한 기억 중에는 사과나 배를 반 잘라서 가운데 씨를 숟가락으로 파낸 후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서 입에 넣어주던 장면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러다 보니 나도 누군가 내가 한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먹는 것을 위해 하루 두세 시간씩 시간을 쏟는다거나 겨우 힘들게 한 음식이 20분도 안 돼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잘 먹은 가족들의 모습에 대한 만족보다는 허탈함이 컸다.


내일 이걸 또 해야 된다고?


게다가 같은 음식을 여러 번 안 먹는 남편 때문에 매번 다른 것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나는 같은 국을 세끼 먹어도 상관없지만 남편은 똑같은 것을 먹으면 자신이 대접을 못 받는다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음식 앞에서는 효율성보다는 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자신이 직접 하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질수록 피곤하고 성가신 게 여러 번... 나는 늘 주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손맛은 또 있다.




내가 공식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어쩔 수 없이 라면 끓이기부터 시작해 사소하게나마 밑반찬을 한다거나 반찬가게에서 사 온다거나 등으로 끼니에 직접 신경을 쓰면서 주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퇴근이 늦어지고 남편이 스스로 밥을 해결해야 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남편도 손맛이 더 좋아지고 있었다.


요리 레시피를 찾아본다거나 밀키트 재료가 있으면 구성품을 눈여겨본다거나 TV에서 요리프로그램이 나오면 유심히 보면서 따라 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양념이 세고, 영양소는 고려하지 않은 음식들이 자주 올라왔지만 내 몸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얼마 전 남편이 수육을 거하게 삶아 내서 맛있게 먹은 날 선언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즐겁게 하는 사람과, 억지로 하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우리의 차이인 것 같아. 나는 앞으로 열심히 먹어 줄 테니까 요리는 즐거워하는 사람이 하도록! 대신 돈을 열심히 더 벌어 보겠습니다!"




오래전 교직원 식당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내 자리로 오신 적이 있는데 그날은 급식으로 특식이 나온 날이었다. 남자 교장선생님과 여자 교감선생님의 대화를 들으며 불편하게 밥을 먹던 중 참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식사를 하는데 내도록 요리 재료와 레시피에 대해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서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었다.


특별히 요리에 관심 많으신 교감선생님은 요리법을 찾아서 직접 장을 보고 퇴근하는 길이 즐겁다고 하신다. 레시피대로 요리해서 먹어 본 다음 날에는 응용해서 요리를 하신단다.


교장선생님은 곧 퇴임을 앞두고 계시는데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요리에도 관심을 갖게 되셨단다. 나도 저들의 연령이 되면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그 후로도 몇 번 그분들과 우연한 식사자리는 있었고, 때마다 요리가 중심인 대화는 여전했다.


이후 병원에 근무할 때 역시 몇몇 사람들은 요리 레시피를 공유한다거나 싱싱한 재료를 파는 가게를 공유하는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 재미있지도 않은 요리를 할 순 없었다.


각자가 잘하는 것이 있을 테니...




나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청소를 열심히 하고, 남편은 요리를 책임지는 것으로 우리의 균형을 이루기를 바란다. 저녁 당번을 피하기 위해 나는 일을 더 열심히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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