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4)
한겨울이 되면 보이는 게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갖은 빛깔과 형체로 부풀었던 것들이 빠지고 꺼지면서 사물 본연의 뼈가 드러나는 시기라고 할까. 기온과 일조량이 지극히 떨어지는 엄동설한의 계절이 오면, 웬만한 나무에는 남아있는 잎사귀가 거의 없으므로, 나무의 맨 얼굴, 아니 맨 자태를 마주하게 된다.
오늘 오후엔 도서관에서 빌릴 책이 생겨서 도서관 나들이와 산책을 함께 묶어서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늘 가던 대로 계남근린공원을 경유하여 구로올레길로 오르려다 색다른 길을 탐색하고 싶어졌다. 공원에 다다르기 전에 보이는 샛길의 오르막을 한참 올랐더니 어느새 내 앞으로 능골산자락길이 펼쳐졌다.
능골산자락길은 노약자, 장애우, 임산부도 산 정상까지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산책로 전 구간의 경사각도가 8% 이하인데다 산책로 처음부터 끝까지 말끔한 목재 데크로 깔려있다. 보통 지표면보다 꽤 높이 공중에 띄워진 산책로여서, 여느 산책길과는 조금 다른 풍경을 보면서 걷게 됐다. 평소 산책 때에는 고개를 치켜들고 걷지 않는 한 시선이 바닥으로 향하기 쉬워서 시야에 들어오는 게 주로 나무의 밑둥이나 뿌리인데 반해, 공중의 데크길을 걷는 동안엔 나무 중심기둥, 혹은 나뭇가지를 바라보면서 걸었다. 심지어 어느 지점에선 나무 우듬지까지 볼 수 있었다.
며칠 전에 큰 폭설이 내리고, 어제그제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나무에 붙어있는 잎사귀들이 그야말로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향해 화살표처럼 시원하게 뻗어나갔거나 물음표처럼 굽이치는 나뭇가지들의 형상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런 풍경이야말로 비움과 정리의 한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특색있는 산책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무 꼭대기에 걸린 까치집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계절에는 이만큼 까치집이 눈에 잘 띄지 않을 테니까. 한참 아래에서 올려다 봐도 까치집들 크기는 어마어마했는데, 까치 부부가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수없이 나뭇가지와 지푸라기와 흙덩이를 물고 오갔을지 놀랍고 신기했다. 어느 다큐에선가, 까치집은 <조류계의 타워팰리스>라고 불릴 만큼 정교한 기술로 지어졌다고 하던 게 떠올랐다. 까치집은 이중구조로, 바깥은 나뭇가지들을 빼곡하게 끼워넣고, 안쪽은 지푸라기와 흙으로 촘촘히 채워넣어서 아기새들을 안전하고 따뜻하게 키워내기에 안성마춤의 보금자리라고 했다.
까치집이 한번 눈에 들어오자 그때부터 까치집이 어디 있나, 얼마나 더 있는지 찾느라 나무 우듬지만 올려다 바라보며 고개를 치켜들고 다녔더니 늘 뻐근했던 뒷목에 스트레칭 효과가 나타났는지 문득 목 근육이 시원해진 걸 느꼈다. 거기다 유난히 쨍하니 푸르른 하늘도 곁들어 보고 다녔더니 침침하던 눈까지 상쾌해지는 일석이조의 행운까지 누리며 걸었다. 아무래도 이런 행운들 또한 겨울산 산책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즐거움과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