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6)
“친구들이 놀래요. 넌 어떻게 나무 이름도 그렇게 잘 아냐고요.”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는, 나무 사진을 찍던 내게 다가와서 자신도 나무에 관심 많다고 운을 떼더니 그렇게 말했다.
산책을 나서기 직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SNS 게시물을 읽었는데, 내게 여러모로 불편한 감정을 안겨줬다. 글쓴이는 분명 좋은 의도로 자신의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분투기를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게시했겠지만, 어쩐 일인지 글 전체에서 진솔한 경험담 보다는 자기과시와 훈계조의 태도가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좋은 의도, 탄탄한 배경지식, 정연한 논리, 유려한 문장으로 글을 썼더라도, 글에서 비대한 자아를 숨길 줄 모르고 곳곳에댜 흩뿌려 놓았다면 그 글은 일단 망한 게 아닐까 싶었다.
산책길 내내 불편한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출렁이다가 어느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겨울산의 한가롭고 고요한 풍경에 가라앉았는데, 아주머니가 했던 말에 SNS글의 불쾌한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방금 어쩌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도 자기를 내세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구나. 더군다나 중년 이후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어느 틈엔가 자기도 모르는 새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쉬운, 자제하기 일종의 본능 같은 건가 싶었다.
아주머니와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의 걸음걸이로 가다 보니까 한동안 자연스레 동행하게 됐고, 아주머니는 내게 여기 자주 오냐고 묻더니 자신이 산책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걸 더 꺼내놓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 여기서 고라니? 아니아니, 너구리도 자주 봤어요.”
“아, 너구리요? 너구리 밥 주지 말라는 프랭카드 붙어 있는 거 보긴 했어요.”
“아휴, 너무 하네. 이렇게 추운 날, 산짐승들 대체 뭐 먹고 살라고.”
갑자기 아주머니에게 호감이 들었다. 겨울 산진승의 궁핍한 처지를 가련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그때부터 아주머니가 들려주는 너구리 이야기에 귀가 열리고 마음이 즐거워졌다.
“있잖아요. 지난번에 저기 무덤가에 너구리 아기 네 마리랑 엄마 아빠, 이렇게 여섯 마리가 요리조리 신나게 뛰어다니더라고요. 걔들 얼마나 예쁘고 귀엽던지요.”
“어머, 그랬어요? 걔들 집이 여기 근처에 있나 보네요.”
"가만히 보니까 어디 땅굴 같은 데로 들어가는 것도 봤어요.”
아주머니는 내게도 너구리 식구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은지, 지난번엔 저기서 봤는데, 그저께는 여기서 보이던데, 라면서 산 여기저기를 바삐 휘둘러 보면서 다녔다. 아주머니의 해맑고 다정한 친절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아주머니가 쳐다보는 방향을 따라다니느라 내 눈과 발도 바삐 움직였다. 문득 자기 자랑과 후한 선심은 동전 양면처럼 붙어있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능골자락길 끝에서 아주머니와 나와의 동행은 끝났다. 내가 먼저 가세요, 라고 인사하자 아주머니는 그래요, 라며 돌아서서 갔다. 짧고 담백한 만남에, 내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주머니와 헤어진 후, 나는 아까 찍으려던 나무를 더 찾아서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쭉 뻗어나가는 목재 테크길의 진로에 방해되었을 법한, 굽고 뻗나가서 자라던 나무를 싹둑 베어버리지 않고 테크길에, 난간에 차라리 구멍을 애써 뚫고 진로를 변경하여 그들을 살리는 그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부지런히 카메라를 움직였다. 이런 멋진 아이디어도 누군가가 세상에 기어이 말하고 싶어서 나온 마음 조각 중 하나겠으니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