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질투심과 썩은 나뭇가지

[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8)

by 안이다
<추워도 환한 겨울의 한낮>, mixedmedia, 16절, 2025년 2월

드디어 기온이 0도에 도달했다. 지난 일주일 내내 바깥에 나가면 얼굴 살갗이 곧장 아릴 만큼 얼얼하고 살벌한 추위가 맹위를 떨쳤다. 한낮에도 영하 10도 언저리에서 맴돌던 기온이 마침내 영상의 기온 즈음에 이르렀다.


집을 나와서 걸어보니까, 아직 된추위의 기운이 거리에 떠돌고 있어서 그런지 겉옷을 제법 단단히 챙겨입고 나왔는데도 옷 사이로 으슬으슬한 냉기가 자주 파고들었다. 하지만 햇빛이 환한 곳에선 그새 계절이 바뀌었나 착각할 만큼 공기가 부드러웠다.


0도라는 기온은 두 가지 얼굴을 지닌 온도구나 싶었다. 햇빛이 있는 곳에선 영상 쪽의 따스한 봄 얼굴을 한 0도, 그늘진 곳에선 영하 쪽의 으스스한 겨울 얼굴을 한 0도.


오랜만에 나온 산책이니까, 오늘은 새길 탐색 말고 늘 다니던 길로 가자 싶어서 구로올레길 인근의 공원부터 들렀다. 어디선가 빵빵! 뻥뻥! 힘차게 공차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그동안 춥다고 나만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지냈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배드민턴장과 게이트볼장에 가득 모여 있었다. 꾸준히 운동을 이어온 이들의 활기찬 에너지와 쾌활한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순간, 가슴에 부러운 감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는데, 그 마음이 지나간 자리에 쓰린 느낌 같은, 예상치 못하게 통증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스쳐가는 생각이 <다음 생에는 나도 휴일엔 정다운 친구들과 신나게 공차는 삶을 살았으면…>이었다. 그건 질투의 감정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타인들의 활기와 친목에 부러운 마음을 넘어선 질투심이 솟구치다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대체 뭐가 질투가 날 만큼 부러운 건가 싶어져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아주 단순하게 진단하자면, 남의 떡이라서 더 크고 좋아보이던 모양이었다.


실은 그 시간에 나는 지인들과 어느 갤러리에 가 있어야 했는데 한 주간의 마무리, 혹은 새 주의 시작점인 일요일에 번잡한 시내로 나가서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서 그 일정은 다음으로 혼자 다녀와야지 하고 미뤘던 터였다. 그런데도 나는 휴일에 나 홀로 산책다니는 처지가 내심 처량하고 외롭다고 여기고 있었나 보다. 거기 운동장에 모여있는 이들이, 내가 상상하는 대로 <휴일엔 정다운 친구들과 신나게 공차는 삶>을 사는 건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들 또한 다른 이들의 삶을 남의 큰 떡으로 여길지도 모르는데, 그야말로 괜스레 부풀리거나 왜곡된 짐작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거였다. 곧잘 번잡한 걸 피하여 혼자인 선택을 해놓고서 외롭다고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내 무의식적인 행동패턴이 다시금 분명하게 읽혔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재지말고 시원하게 쭉 뻗으며 날아가는 공처럼, 다음부턴 약속이 있으면 그냥 나가서 사람들이랑 어울리자 싶었다.


그러고 얼마나 걸어갔을까? 내 앞에 어느 아주머니가 Y자 모양의 작대기를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휘두르고 있는 게 보였다.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다소 거칠고 과격하여 나무에다 작정하고 해코지하는 것 같아서 불쾌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그냥 두고 보면 멀쩡한 나무들이 부서지고 부러질 것 같아서 일단은 항의조의 어감을 묻혀서 대체 뭐하시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큰소리로 또박또박 다시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왜 나무를 쳐내나요?”


아주머니는 나를 힐끗 보고는, 아주 짤막하게 대답했다.


“썩은 나무 정리.”


그러고는 쉼 없이 작대기로 나무들을 후려치고 또 후려쳤다. 나무관리에 무지한 나로서는 아주머니의 행동이 썩은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건지,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쳐대는 분풀이성 행동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걷다가 걱정스러워 뒤돌아보다가 반복했는데, 아주머니의 행동이 나무관리 차원에서 하는 행동인지 도통 모르겠었다. 다만 뒤늦게 파악할 수 있는 건, 아주머니는 누군가 통화하면서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질문을 듣지 못하여 대답이 늦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뭇가지를 쳐대는 손놀림이 그럭저럭 익숙해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뭔가 과하긴 해도 아주 이상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나뭇가지가 썩었다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부러지거나 삭아서 떨어져 나갈 텐데 굳이 저렇게까지 파괴적으로 해야 하나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러고 얼마 안 가 아주머니는 작대기를 내려놓고 통화에 집중했다.


내가 더는 상관하기에 모호한 상황이어서 뒤돌아서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썩은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장면이 왜 하필 지금 내 앞에 나타났나, 앞의 질투심 상황과 의미망으로 묶어보려고 슬그머니 줄을 덧대려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게 느껴져 화들짝 깨어났다.


차라리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곧 다가올 봄을 대비해 저렇게 나뭇가지를 인위적으로 쳐내는 게 더 나은 건지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인터넷 검색으로 금방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인지 모를 일이었다. 앞서 느낀 괜한 질투심의 상황과 뒤에 본 썩은 나뭇가지 정리상황은 개별적인 상황인데, 그걸 하나로 연결하려는 생각이 그야말로 썩은 나뭇가지에 불과할 수 있어서였다.

keyword
이전 07화새해엔 쉽게 즐거워지는 사람이 될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