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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은 인연의 바람에 맞서는 동안

[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10)

by 안이다

그날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임 날이었다.


길찾기 앱을 보니 대중교통과 도보 모두 비슷하게 40분 정도가 걸렸다. 버스를 타고 간다면, 두 번 갈아타야 했다. 도보로 가는 방법은 단순했고, 가는 길이 산뜻했다. 줄곧 안양천 산책로를 걷다가 목적지에 도착 5분 전 즈음에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면 됐다. 시간 차이가 없으니 산책도 할 겸 걷기로 했다. 하지만 모임 당일 한파가 매서웠다. 40분을 걷기엔 무리라 버스를 한 번 타고, 갈아타는 지점인 문래동에서부터 20분 정도 걷기로 했다.


노후한 철공소와 개성 넘치는 카페가 한 골목에 뒤섞여 있는 문래동을 걷다 보니 평소 산책 때와는 달리, 어디 나들이라도 나온 듯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노래까지 흥얼대며 오래된 골목이나 예술적 감각이 묻어있는 건물이 보이면 절로 카메라에 손이 갔다.


그러다 어느 철공소 앞에서인가. 가로수 밑둥 근처에 붉은 낙엽들이 빙글빙글 맴을 도는 게 보였다. 작은 회오리 바람 때문에, 낙엽들이 재미나게 강강수월래 놀이하는 것처럼 보여서 웃음이 났다. 하지만 바람은 이내 방향을 바꾸거나 사라지기 마련이므로, 낙엽들의 강강수월래 대열은 금방 풀어졌고, 제각각으로 흩어지며 거리를 나뒹굴었다.


요즘 사람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서였을까. 그 광경을 보며 ‘인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느날 바람이 불어 우리를 한곳으로 데려다 놓고 한바탕 빙글빙글 돌며 어울리게 했다가 이내 멈추며 흩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인연 아닐까 싶었다. 최근 멀어지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한때 함께 돌며 즐거웠던 순간들. 어쩌면 이제 인연의 바람이 멈출 때가 온 걸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따뜻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고 얼마 후, 모임장소에 도착해 먼저 도착한 멤버와 인사를 나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안부를 주고 받았는데, 상대의 대답이 너무나 의외여서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지난달 우리 모임하고 열흘 뒤에요.”


내가 작은 인연의 바람에 맞서는 동안, 그녀는 거대한 인연의 태풍을 견디고 있었다. 바람은 생과 사를 가르면서도, 사랑과 슬픔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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