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두 달 전의 상념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에도 이야기를 했고 정확히 10월 31일이면 나는 실업자 혹은 자유인이 된다. 내 나이에 퇴사자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44세. 어정쩡한 나이다. 정년퇴직을 하기엔 이른 나이고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엔 늦은 나이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건 동시대의 선배 퇴사자들이 보여준 퇴사 그 후의 인생 덕분이다. 돈은 조금 덜 벌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 조금은 여유롭고 마음 편하게 점심을 먹고, 선택과 집중이 있는 삶. 더 늦기 전에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말 같지 않은 주말, 휴가 같지 않은 휴가 때문이었다. 겨우 그 정도로 퇴사를 결심하다니 인내심도, 책임감도 없는 사람처럼 비칠 수 있겠다. 어쩔 수 없다. 그 세세한 속사정을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내게 주말과 휴가는 평일을, 아니 일상 전체를 또렷한 정신과 온전한 체력으로 보낼 수 있게 하는 바탕 같은 것이었다. 주말에도, 휴가에도 계속 체크해야 할 것이 생기고, 불쑥불쑥 카톡이 날아오는 상황은 나를 지치게 했다. 달리기 후 숨을 고르지 못하고 다시 또 트랙에 나서야 하는 사람처럼 몸에 힘이 없었다. 주말만 기다리는 평일이, 그렇게 평일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하는 그 모든 것이 월급에 포함돼 있다지만 진이 빠지는 그 작업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온전히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한다. 나처럼 귀가 얇고 줏대가 약한 사람에게 퇴사는 뭉근하고 집요한 스트레스다. 운전을 할 때도, 애들과 놀아줄 때도,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도 이제 오롯이 혼자 헤쳐가야 할 일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일희일비를 제대로 겪고 있다. 일의 구조를 만들어 보며 밤에는 불끈 생기가 넘쳤다가 아침이 되면 그게 될까? 그 바닥엔 이미 선수들이 넘치고, 내겐 다른 플레이어들이 갖고 있는 인맥도 없는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며 금세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다 또 골몰을 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다시 파이팅 하는 마음이 됐다가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기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지며 우울한 기분이 된다. 나이키가 저스트 두 잇을 캐치프레이즈처럼 외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달리지 못할 이유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표를 던진 데 대해 후회보다는 희망이 꿈틀대는 이유는 선배 퇴사자들이 보여준 제 2의 인생 덕분이다. 최근 한 사진가 그룹을 인터뷰했다. 한참 잘 나가는 창작 그룹인데 그들의 시작이 재미있었다. 한 명이 건축사무소를 다니다 그만두고 서촌에 펍을 낸다. UI 디자인을 하다 역시 그만 둔 또 한 명이 그곳을 드나들다 자연스레 단골이 된다. 그렇게 둘은 함께 해볼까? 하고 의기투합하고 자신들의 브랜드를 만든다. 이제 그곳은 사진업계, 창작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큼 유명한 곳이 되었고, 최근에는 한 명이 추가로 들어오며 더 탄탄한 조직이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고. 지금 길에서 내려 오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지만 길은 다시 이어진다고. 끝난 길을 억지로 억지로 힘겹게 이어 붙이는 순간에 다른 기회의 순간들이 훌훌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고.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한 선배는 최근 유리공예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많은 날들, 특히 회사를 그만두던 시점에 특히 힘들고 피곤해 보였는데 요즘엔 얼굴에 생기가 돈다. 선배가 그랬다. “45세는 마지노선 같은 거다. 더 늦으면 안 된다. 내가 50 넘어 퇴직하지 않았느냐. 아무도 안 찾아주는데 그것이 새삼 또 놀랍고 좌절스러워 새로운 시작을 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퇴사는 끝이 아닌 시작 같았다.
다시 생각한다. 내가 정말 잘 하는 건 뭘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 이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당장 퇴사를 해도 될 터인데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예 절망적이진 않다. 10번 생각하면 그 키워드가 4~5번쯤 떠오른다. 그렇게 아무리 주판을 두드려도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저스트 두 잇! 일단 하자!”하는 마음이 든다. 그들처럼 걷던 길에서 내려오는 것, 그것만으로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투명한 유리처럼 모든 것이 막연하고 흐릿하지만 그 너머 뭔가 좋은 것이 아른거리고 있을 것 같아 긍정적인 기분이 된다.
예전에만 해도 가장이 퇴사를 한다는 건 무책임하고 무능력하다는 비난을 받을 일이었지만 사회가 변하고 자기의 길을 가는 수많은 선배 퇴사자들의 영향으로 '음 뭔가 안 맞았나보네',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가보네' 하는 분위기가 된 듯 하다. 퇴사를 앞두고 어머니보다 장모님이 더 신경 쓰였는데 뜻밖에 "잘했네! 집에서 애들만 잘 키워도 돼지. 그게 돈 버는 거야" 하신다. 감사한 마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 이라는 말은 40대가 넘어서야 이런저런 계기와 사건으로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이 많은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