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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Oct 19. 2019

집짓기, 나의 그릇을 시험하는 생생한 현장

어제는 오픈하우스 서울 행사에 다녀왔다. 그 행사를 언급하긴 했지만 평소 친분이 있는 분이 우리 부부를 초대해 우이동에 새로 올라간 집을 구경하는 자리였다. 그것도 건축가가 직접 공간을 소개하는 흔치 않은 자리. 우리 부부는 며칠 전부터 시간을 빼 두었다. 최근 서촌에 협소 주택을 지은 터라 다른 사람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지었을까? 궁금했다.


우이동에 있는 그 집은 부가 유독 궁했던 곳이다. 1층에 리트리트라는 카페가 는데 반계단 내려가는 단차며 그렇게 내려가면 나타나는 자갈 깔린 야외 공간이며 가구 하나, 동선 하나까지 신경을 많이 쓴 곳이었다. 곳을 지은 이들이 카인드 건축이라는 듀오 건축가 그룹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집은 빨간 벽돌집이었다. 동화 <아기돼지 3형제>의 영향도 있는 걸까? 난 단정하고 견고해  힘센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곳 벽돌은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적벽돌이 아니다. 균일한 질감과 컬러의 모 적벽돌이랄까. 벽돌 사이사이 매질도 벽돌과 같은 색으로 마감해 '요즘 건물'이라는 태가 많이 난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쪽은 그물망처럼 사이사이 트인 공간을 만들며 벽돌을 쌓아 올렸고 지하실 출입구는 동그란 형태로 처리했다.


카인드 건축 두 소장님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집에서 나는 방송사 오락 프로그램 방청객처럼 연신 우와를 내뱉었다. 두 소장님이 별도의 인테리어 팀을 갖추고 내부 곳곳까지 확실히 마감을 한 덕분이었다. 신발을 두는 곳은 귀퉁이 부분을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했고 그 라인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바로 앞 천장 공간도 '호'를 그리며 마감했다. 바로 옆집은 저런 기와가 아직도 남아있구나 싶은 오래된 기와집이었는데 그 지붕을 감상할 수 있도록 내부 공간에 맞춤한 창문을 뚫었다. 곳곳에 디테일의 미학이 살아있었는데 이런 것까지... 하고 특히 감동한 부분은 일명  '걸레받이'. 아래쪽으로 아예 홈을 파 안쪽으로 집어넣어 걸레로 더럽혀지는 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거실 창문 아래쪽으로는 건축주의 바람대로 가로로 길고 편평한 기단을 만들어 그 위에 앉거나 누워 편히 책을 보거나 창밖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디테일이 너무 좋다며 감동하는 우리에게 두 소장님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왕 합판 3장이 필요하면 10장을 주문해 그중 가장 좋은 무늬와 품질의 제품으로 골라 쓰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는 식으로 작업했다"라고 했다. 이 꼼꼼한 '장인'들이라니.

영화 <사랑은 너무 복잡해>에는 누구든 집을 짓고 싶을 만큼 설레는 기분을 선사하는 장면이 있다. 메릴 스트립이 오래된 집을 증축하는데 스티브 마틴은 초록 텃밭에 집의 뼈대를 만들어놓고 "자, 조심하시고 2층으로 한 번 올라가 볼까요? 여기에는 창문이 크게 들어갈 거예요"..."자 이쪽으로 와봐요. 이쪽은 주방인데 최대한 넓게 뺄 거예요..."라며 구현될 공간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텅 빈 공간 너머, 허공으로 펼쳐지는 계단과 거실, 주방... 실제 집이 지어졌을 때를 가정하고 공간을 구획한 상태라 메릴 스트립은 그 실감 나는 풍경에 환하고 행복한 얼굴이 된다. 지어질 집을 이렇게 '보여주는' 건축가라니. 보는 내가 다 감격했다. 누군가 내게 그렇게 집을 보여준다면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카인드 건축의 두 소장님 역시 건축주에게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건축주 어른들은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 카인드 건축에게 설계를 의뢰했다고 한다. 어릴 적 어떤 집에 살았고 어떤 시공간에서의 경험이 여태 남아있는지 찬찬히 정리한 편지와 함께. 느낌이 온 두 건축가는 두 분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더 자세히 알고, 또 반영하고 싶어 구체적 설계안이 나오기 전까지 1주일에 한 번씩 만남을 가졌다. 어느 주는 건축주가 추천한 카페에서, 어느 주는 건축가가 데려 간 미술관에서. 많은 이들이 비효율적이라고 하겠지만 우리 마음은 그렇듯 느리고 정성스러운 시간에 반응한다.

집을 빙 둘러보고 마당에 건축주 부부와 함께 앉았다. 온화하고 점잖은 인상이었다. 사모님은 테이블에 종이를 펴고 뭔가를 쓰고 계셨는데 물으니 건축가분들에게 편지를 썼단다. 집을 짓고 나서도 수시로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시는 듯했다.

건축주 분들에게 "집을 짓다 보면 통상적으로 금액이 오버되고 공사기간도 늘어나고 그러면서 마음고생을 겪고 건축가와도 사이가 틀어지는데 그런 것 때문에 힘들진 않으셨냐?"라고 물었다. 사모님이 남편을 가리키며 이 분이 건축소장님들을 워낙 믿고 이뻐해 컴플레인 한 번 제대로 못했다고 했다. 마음이 조급해 왜 이렇게 늦어지지? 하고 물을라치면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었단다.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고. 절대적 신뢰. 그리고  차분한 기다림


선비 같은 사장님께 소장님들 어떤 면이 그렇게 마음에 드시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참 정직했어요. 어떻게든 좋은 결과물을 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더라고요. 집 짓기는 그런 정신의 문제예요. 돈에 치중하면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대충 하게 되고 유명세를 얻고 싶은 마음이 크면 과시적인 디자인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게 없었어요. 최선을 다해 여기저기 열심히 챙기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좋은 건축물은 좋은 건축주 아래서 나온다, 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집 짓기는 자신의 인격과 그릇의 크기를 시험받는 생생한 현장이다. 내일 또 달라질 집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는 수시로 마음 부침을 겪는다. 괜찮을까? 이대로 두진 않겠지? 너무 좁잖아! 날 선 독백을 남발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내가 그랬다. 하여 마음이 담대하고  상상력이 있는 사람만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했다. 인생을 걸고 하는 집 짓기에는 지난 인생의 기질과 버릇과 품격이 거울처럼 고스란히 투영된다.  


인스타그램에 오픈하우스 소식을 올렸더니 집주인 분이 고량주에 어울릴 이야기 한 보따리 들고 다시 놀러 오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내가 할 이야기는 많지 않고 그저 그분들이 어떻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집을 지었는지만 찬찬히 들어도 참 좋을 것 같다. 그날을 고대하며 오늘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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