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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Oct 26. 2019

드디어 문제가 터졌다

드디어 일이 터졌다. 사람들이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 어쩐다 얘기를 해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공사는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됐다. 우리와 상의 없이 소장님이 유리문이며 보일러 등을 결정해 말씀 좀 미리 해 주시지... 하는 정도는 있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겼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지고 들면 그야말로 스스로 열이 뻗쳐 '자폭'하기 쉬운 것이 집 짓기다.


이제 다 끝났구나, 다행히 무난하게 넘어갔네 싶었는데 한 달 넘게 준공이 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하수관. 당연히 서울시 하수관에 연결을 해야 하는데 공사하시는 분들이 그 위쪽에 있던 대학교 하수관에 우리 파이프를 연결했다.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지 않으니 힘도 덜 들고 비용도 덜 들어 관례적으로 그렇게 했단다. 누가 들어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해결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소장님은 합의서를 써 건축주인 우리가 직접 학교 측에 찾아가 볼 것을 제안했다. 소장님이 전달해 준 합의서에는 문제가 발생할 시 서로 잘 합의해 처리를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본인이 가면 일 처리를 정확하게 하지 않아 욕만 먹기 십상이라며 건축주인 우리가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빠를 거란 판단이었다. 내가 학교 측 관계자라도 이해할 수 없고, 도장을 찍지 않을 것 같았다. 왜 잘못을 해 놓고 느닷없이 합의를 요구한단 말인가.


스스로도 설득이 안 돼 논리가 부족했던지 어렵게 찾은 학교 측 관계자는 동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땅을 파고 하수관을 연결하려면 약 200만 원이 드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 돈이 충분하면 아쉬운 소리 않고 깨끗하게 처리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돈이 부족하니 다시 한번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탁을 하고, 매달리는 일은 사람을 얼마나 작게 만드는지. 우리 아이들이 살면서 이런 일을 최소한으로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구청에 다녀와 망연자실. 정말로 방법이 없을까 좌절했던 시간

또 하나는 정화조였다. 하수관이야 돈을 주고 해결하면 되는데 이 문제는 사안이 중대했다. 측량을 준비하며 철거를 마치고 나니 집이 들어설 자리가 온통 바위였다. 걸리버가 누워도 될 만큼 넓은 바위. 다 깨려면 약 3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맞다. 300만 원이 아니라 3000만 원. 기계가 들어올 수 없어 사람이 일일이 깨부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 뒤쪽으로 넣기로 했던 정화조를 도로와 면해 있어 깰 바위 없는 집 앞쪽으로 옮겼다. 소장님은 나중에 이런 사정을 설명하면 넘어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결과는 아니었다. 정화조를 놓은 공간은 분명 우리 땅이 맞지만 화재 진압 등 비상시를 대비한 공간이라 어떤 설치물도 있으면 안 되는 땅이었다. 전문용어로는 도로 후퇴선. 그 안에 들어가는 땅에는 어떤 구조물도 설치할 수 없었다. 우리 땅이지만 우리 땅이라 주장할 수 없는 땅. 한마디로 ‘꽝’인 땅. 애초의 도면과 다르게 집이 지어졌고 쓸 수 없는 땅에 설치물이 들어가 있으니 정화조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 한 준공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바위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냐, 이런 법규를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쪽으로 정화조를 설치하지도 않았을 거다 공무원을 만나 읍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위법을 저지르고 윤허해달라고 사정하는 셈이니 명분이 없기도 했다.

지반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겁이 난다. 생각만 해도 싫다.

결국 새로 정화조를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를 앞두고 있다. 정화조 위로 말끔하게 조성했던 작은 정원도 허물어야 한다. 아침마다 그 공간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는데… 정을 듬뿍 준 공간이라 떠나보내지 못하는 연인과 마주하는 것처럼 괴롭고 우울하다.


집을 짓는 이들에게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설계 변경 신고. 애초의 도면과 달라지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구청에 설계 변경을 해야 한다. 막연히 되겠지, 하다간 우리처럼 큰 문제를 떠안을 수 있다. 그날 밤부터 정화조 옮기는 비용, 도로 후퇴선, 정화조 뚜껑 크기까지 궁금한 내용들을 검색했다. 비용은 약 500만 원. 설비 업체를 통해 따로 방법이 없는지도 열심히 알아봤지만 묘안이 없었다. 다시 공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웃 주민들에게 다시 공사를 알리며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옆집에는 신생아도 있는데 민폐를 끼쳐야 한다.


집짓기 어렵지 않다,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소장님을 믿고 진행하면 큰 문제없다,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는데… 걱정이 많고 작은 일이라도 터지면 화를 참지 못하는 엄마에겐 이야기도 못했다. 매사에 차분한 장모님은 “인생공부 많이 했다 생각하고 마음 비우고 좋은 마음으로 하게나”하는 문자가 왔다.


집 짓기가 어려운 이유는 불편한 관계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터지고 소장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큰 비용이 들어 분담을 해주겠다는 소장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경비를 지출해야 하니 싫다. 그렇게 소장님과 불편한 관계가 됐지만 일은 해결해야 하고 다시 대화를 해야 한다. 슬픈 건 혹시라도 모를 사고나 추후 문제를 봉쇄하기 위해 계속 인터넷 검색을 하며 이건 이렇고 저건저러하다니 소장님 신경 써 주세요, 하고 말을 해야 한다는 거다. 왜 좀 더 정확하게 일을 체크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자괴감이 들면서 깐깐하고 까칠한 사람이 되는 거다. 나는 이 지점이 슬프다.


집 짓다 보면 10년은 늙는다! 이 통념을 보기 좋게 깨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처럼 이런 위기를 겪을 때 “신이 지금 기분이 좋은가 봐. 우리와 장난을 치시잖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이면 좋겠지만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정화조를 집 옆에 묻으며 바위를 깨야 하는데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지반을 건드려 집이 기우는 등의 재앙이 일어나진 않을까 싶어서. 건축가와 건축주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지를 놓고 신들이 장난을 치는 것도 같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지구는 둥글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직선으로 걷다가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반대로 힘든 길 끝에 좋은 길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앞서 집 짓기는 나의 그릇을 시험하는 생생한 현장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그렇다.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나의 그릇과 기질에 대해 너무나 잘 알게 된다. 굳이 이런 과정을 통해 알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분명 무탈하고 즐겁게 집 짓기를 마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때문에 집 짓기가 사람 잡는 일이란 걸 나까지 거들어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됐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도면대로 집을 짓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때문에 변경되는 건이 있으면 반드시 구청에 사전 신고를 하라는 것. 그리고 예비비를 꼭 마련해 두라는 것. 그래야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했을 때 조금은 담담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다. 집짓기 역시 대부분의 갈등과 싸움은 결국 돈 때문인데 이를 위한 대비책을 처음부터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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