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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Nov 16. 2019

아파트 룰렛에서 해방되다

아파트는 가장 광범위하고 이곳저곳에서 잭팟이 터지는 일상의 로또가 아닌가 싶다. 수혜자도 그만큼 많다. 나는? 지지리 운도 없다.


신혼을 길음 뉴타운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했다. 2005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막둥이 장가갈 때 주라며 어머니에게 맡겨놓은 돈 1억에 1억 500만 원을 대출받아 23평 아파트를 샀다. 새가슴이라 고액의 대출을 받을 배포가 되지 않는데 신혼을 제대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지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신혼 때는 다 그렇겠지만 새 아파트가 주는 아늑함과 청결함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아파트값도 영향을 끼쳤을까? 자연스럽게 국민은행 시세 알람 사이트를 알게 됐고 가격 상승을 의미하는 빨간색 삼각형을 본 뒤로 그 사이트에 접속해 시세를 확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어떤 날은 300, 어떤 날은 150, 그러다 어떤 날은 700. 연일 오르는 아파트값을 보고 흡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2년. 아파트는 3억 1000만 원이 되었다. 한 달 40만 원 가까이 낸 이자를 빼 더라도 큰 차익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돈을 벌 수 있구나. 이래서 아파트, 아파트 하는구나.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렇게 눈을 뜬 나는 아파트 맹신론자가 된다. 그 아파트를 팔고 남은 돈으로 길음 뉴타운 아래쪽에 막 공사를 시작한 래미안 8단지 분양권을 샀다. 3억 6000만 원. 아파트가 지어지는 2년 동안 살 집도 없으면서, 래미안 8단지는 5억까지 간다는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님들의 말을 듣고 배팅을 한 것이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엄마 집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슬슬 고부갈등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매일 노모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데 어떻게... 하는 마음이 들어 외출도 마음 편히 못했다. 그렇게 식사를 차리면 어머니는 "막둥이 밥은 냉겨놨냐?" 말씀하셨다. 눈 딱 감고 맛있게 드시면 좋으련만 탐탁 찮은 표정일 때가 많으셨고 아내는 그런 일상의 반복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어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나날들. 한 번은 마음 단속을 못하고 바보 같은 짓도 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하면서 책장에 있던 책을 다 꺼내 내팽개치고 아아악 하고 분노한 사자처럼 악도 질렀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첫째를 안고 있던 아내는 그날 밤 긴 편지를 남겨둔 채 집을 나갔다.


그 얘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은 흘러 입주를 했다. 아내는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시댁에 시간을 견딘 담보로 받은 아파트였기 때문이었을까? 정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푸르지오보다 2편이나 넓은 25평이었는데 거실이 훨씬 좁게 느껴졌다. 집에 들어가면 아 좁다, 답답하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람들은 "푸르지오가 베란다를 넓게 빼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같은 평수라도 훨씬 넓어 보인다"라고 했다. 그런 것 같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 웬일인지,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았던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았다. 왜 이런 거지? 1년 넘게 기다려도 아파트값은 오르지 않았고 아내도 끝내 행복해지지 않았다. 결국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평소 아내가 가고 싶다던 서촌 한옥으로 이사를 갔다.


서촌 한옥에서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허물어져 가는 한옥. 화장실도 밖에 있는 한옥이었는데 넓은 마당이 있었고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그곳에서 살다피 했다. 여름에는 모기장을 치고 마당에서 잤다. 돗자리 위에서 과일을 먹고, 라면을 끓이고, 삼겹살을 구웠다. 벌러덩 누워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만 30분 넘게 보는 날도 있었다. 손님도 끊이지 않아 매일이 집들이였다. 아파트에서는 시들했던 부부관계도 좋아져 둘째도 생겼다. 한동안 아파트값을 쳐다도 안 봤다.


그렇게 일상이 행복하니 서촌에 자리를 잡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결정의 순간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평생 살아라,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사니 좀 좋으냐, 걱정 말고 맘 편히 살아라, 따뜻한 말을 해 주었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 집값이 들썩이자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미안했는지 우리에게는 딸이 들어와 살게 됐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셋값을 1억 올리고 신혼부부에게 세를 주었다. 전셋값 올려드릴 테니 살게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었는데... 다시 아파트로 가야 할까? 서촌에 집을 구해야 할까? 고민하던 우리는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했다. 전세로 살며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파트값을 3년 만에 다시 들여다봤다.


젠장. 약속처럼 오르던 아파트값이 그대로였다. 심지어 거래도 없다고 했다. 3억 6000도 받기 힘들 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파트는 끝났다, 예전처럼 오를 일은 없다고 했다. 아파트의 종말을 선언하는 책들도 쏟아져 나왔다. 정말 끝인가 싶었다. 결국 3억 5000만 원에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간 낸 이자, 1000만 원 가까운 취등록세를 빼면 많이 밑진 장사였다. 어떻게 들어간 아파트인데... 속이 쓰렸다. 며칠간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렇게 아파트를 판 직후부터 아파트값은 기다렸다는 듯 치솟기 시작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올랐다. 끝이라더니 상승세에 끝이 없었다. 그렇게 1년 반 만에 7억이 됐다. 어찌나 열불이 나던지. 그렇게 몇 날 며칠 마음속에 불덩이를 껴안고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제 아파트는 내 것이 아니다, 신경 써 봐야 아무 필요 없다 생각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생각이 났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겨우 아파트값에 조금 무뎌졌다. 아직도 한 번씩 열불이 나긴 하지만 그 온도가 예전처럼 뜨겁진 않다. 그런데 겨우 아문 상처에 타의적으로 다시 생채기가 날 때가 있다. 친구들과 선후배 모임에 가면 여전히 아파트 얘기다. 얄궂게도 내 사정을 알고 "어디 그 아파트 한 번 볼까?" 하고 내 앞에서 국민은행 시세 사이트를 여는 인간도 있다. 썩을 놈.


그렇게 아파트값을 확인하면 새삼 또 놀라운 기분이 되지만 거기까지다. 20평대 아파트가 8억이라니, 그럴 일인가 싶고 이러니 결혼을 포기하는 청춘이 속출하지 싶다. 어느덧 잠시의 객관화까지 가능해졌다. 성숙해져서가 아니다. 이미 나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아파트 한 채보다 몇 억이 싼  협소 주택이지만 이곳에서 살아내기도 바쁘다. 여전히 대출금이 있고, 한 번 집을 지은 이상 적어도 10년 이상은 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아파트값은 이제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뇌가 그렇게 세팅다. 비교하지 말아라,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니... 하고 모든 책에서, 모든 행복론자들이, 모든 종교가 말하는 데 지금 집에서의 행복만 생각하게 되니 협소 주택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가지지 못해서,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가 다시 가질 수 없을 만큼 저 멀리 가버려서 오히려 자유로운 마음이다. 아파트 룰렛에서 내려온 것이 속 시원하기도 하다.


나와 상관없는 것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삶은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그들이 어디에 살든, 무엇을 먹든, 얼마가 있든 신경 쓰지 않는 삶. 도인이 아니고서야 그런 세상의 잣대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만인의 로또인 아파트값에서라도 이렇게 한 발짝 비켜났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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