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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Nov 10. 2019

질색하던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야옹, 야옹...

분명 집 뒤 담벼락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였다. 작고 희미한 소리였다.

새끼 고양이가 왔나 보네 하고 처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들려오던 그 소리는 점심때를 지나 저녁에 약속이 있어 집을 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어디에 끼었나 싶어 집 밖으로 나가 우리 집과 면해있는 대학 담벼락을 올려다보았다. 야옹아, 야옹아 어딨니?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돌아서려고 하면 다시 야옹. 고개를 들어 이곳부터 저곳까지 쭉 훑어보아도 웃자란 잡초들과 야생화 줄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그대로 둔 채 외출을 하면서 119에 전화를 했다.


"저기 여기 주소가 종로 oo 동인데요.  쪽 담벼락에 고양이가 끼었는지 종일 우네요. 구출해 주실 수 없을까요?"

차분히 이야기를 들은 상담원은 "죄송하지만 이제 동물 구조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 수많은 동물들을 일일이 구조하고 다녔을 대원들의 고생을 생각하니 십분 이해가 되면서도 "아 그래요?... 그런데 그러면 저렇게 죽게 놔 두나요?"하고 미운 말이 나왔다. 구조대원은 "죄송하지만 저희로서도 방법이 없네요"라고 했다. 포털 사이트 창을 열고 동물구조라고 키워드를 넣으니 죄다 경기도에 있는 곳들 뿐이다. 031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들. 분명 서울에도 구조대가 있을 텐데 생각했지만 약속이 늦어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저녁 10시쯤 집에 들어와 고양이 소리를 확인했다. 몇 분 기다릴 것도 없이 다시 희미한 울음소리가 났다. 주방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도 안 보이고, 화장실 문을 열고 상체를 내밀어 담장 쪽을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밤이 그렇게 춥진 않다지만 이제 겨울인데... 얼어 죽진 않으려나...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쯤. 잠이 깨 화장실에 가는 길에 다시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있는 힘껏 다급하고 애처로운 소리였다. 무슨 일 이래... 저렇게 죽지 않으려나... 생각하다 아침 대학교 후문이 열리자마자 담장 쪽으로 뛰어갔다. 고양이라면 아주 끔찍한, 용돈이 생기면 고양이 사료를 사 동네 빈 그릇마다 밥을 채우고 다니는, 그래서 아빠 우리 고양이 좀 키우면 안 돼? 수도 없이 물었던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도 덩달아 부랴 부랴 옷을 챙겨 입고 나를 뒤따랐다.  


담벼락 쪽에는 급식실이 있었다. 느닷없이 급식실 쪽으로 달려오는 아저씨를 보고 영양사가 깜짝 놀라 "여기, 어떻게 오셨지요? " 따져 물었다. "담벼락 아랫집에 사는 사람인데 어제부터 새끼 고양이가 계속 울어요. 어디에 끼었나 본 한 번 보려고요" 그렇게 담벼락 위 녹색 철조망 안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수풀을 헤치고 열심히 바닥을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이 되었다. 바깥쪽에 있던 딸아이도 아빠 안 보여? 하고 재차 물었다. 에어컨 실외기를 타고 넘어가 교문 쪽 철조망 아래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래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야옹아 어딨니? 하고 애타게 불러도 놀랐는지 답이 없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가까운 곳에서 야옹~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가까운 곳이었다. 잡초를 해 집고 아래쪽을 뒤지니 구렁이처럼 굵은 배관과 철조망 사이에 몸이 낀 새끼 고양이가 보였다. 반하고 말았다. 귀엽고 이뻤다. 검은색과 갈색이 뒤섞인 털. 선한 눈망울. 작은 발가락. 옆을 살펴 돌멩이를 구한 다음 아래쪽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작은 틈이 생기자 아기 고양이는 위쪽 담으로 올라가려 했다.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아 조심조심 꼬리를 잡고 아래쪽으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아 됐다... 갑자기 심장은 왜 이리 뛰는지. 배고프지? 얼른 집에 가자, 혼잣 맛을 하며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달려왔다. 아빠 아빠 괜찮은 것 같아? 안 아파 보여? 이쁘다 하는 딸아이의 음성이 BGM처럼 깔렸다.


놀란 고양이가 작게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손등에 상처가 났지만 싫지 않았다. 내가,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는구나, 잠시 묘한 감정이 되었다. 나는 개, 고양이라면 질색을 했던 사람이다. 집안 내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안 돼 집에 모인 형과 누나들이 엄마에게 "엄마, 적적하시니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우면 어때요?"하고 물었을 때 엄마는 그랬다. "이 나이에 미쳤다고 강아지 새끼 똥오줌 치우면서 사냐?" 맞는 말 같았다. 엄마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뭣하러 강아지 뒤치다꺼리하고 사냐?"며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도 설득력이 있었다. 길에 버려진 강아지를 집에 데려와 씻기고 먹인 작은 형수가 형에게 "여보, 이 강아지 키우면 안 될까? 너무 귀엽잖아. 불쌍하기도 하고"라고 말했을 때 형은 이랬단다. "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 가족에게서 난 사람이니 나 역시 강아지, 고양이라면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 똥오줌을 어떻게 할 거며, 이불과 옷에 덕지덕지 묻는 털은 또 어찌할 거며, 삼시세끼 밥 챙기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는 일은 누가 할  건지를 생각하면 절로 싫어, 싫어하는 마음이 되었다. 여행 갈 때는 또 어떻고 한 마디로 골치!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랬던 내가 새끼 고양이를 안고 다급한 마음이 되어 뛰어가고 있는 것이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그리고 구출 현장에서 합류한 첫째는 난리가 났다. 너무 귀엽다며. 그때까지도 나는 짐짓 싫은 내색을 하며 "대충 밥만 먹여서 내 보내"하고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 말을 귓둥으로도 듣지 않았다. 고양이를 보느라 바빴다. 첫째는 3000원을 챙겨 들고 고양이 사료를 사러 슈퍼로 뛰어갔다. 아내는 절친이자 수의과 의사인 유미 씨에게 카톡을 보내 뭘 먹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둘째는 학교 갈 준비도 안 하고 고양이 머리만 쓰다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백수. 저 고양이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인연인가? 신기하지. 그 울음소리는 왜 하필 내게, 그렇게 크게, 지속적으로 들렸을까. 급식소 아저씨는 "가서 한 번 봐요. 어제부터 아주 시끄러워 죽겠네"하고 짜증을 내며 말했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이 말랑말랑해나? 고양이 키우게 해 달라는 아이들 말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었나?


그렇게 고양이는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이름은 핀! 허클베리 핀의 그 핀. 하루 만에 집 계단을 팔짝팔짝 내려가고, 대소변은 모래상자에서만 하고, 강아지처럼 사람 품을 좋아하는 녀석. 바닥에 앉아있으면 아장아장 걸어와 다리 위에 자리르 잡고 잠을 자는 아이. 분명 길냥이 었을 텐데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알아서 대소변을 가린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EBS 건축 탐구 집에서도 활약 중인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가 그랬다. "단독주택에 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계속 생겨요. 그 맛에 단독주택 사는 거죠." 그렇군. 맞는 말이네. 내가 새끼 고양이를 키우게 되다니.


핀이 우리 집에 온 지 3일째. 아이들은 "오늘 내가 핀이랑 잘 차례"라며 티격태격하고 아내는 내가 들어오면 "핀, 아빠, 오셨다" 한다. 아이들이 없을 때는 품속에 꼭 껴안고 이뻐 죽는다. 어제는 엄마 품이 그리웠는지 아내 품 속에서 젖무덤을 찾는 것처럼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옴싹 거렸다. 핀, 귀여운 핀. 아프지 말고 행복해라. 지금처럼 똥오줌은 철저하게 가리고! 전선줄 갉아먹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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