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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간과 미식가

취향과 편견 그리고 경험에 대해

by 이주인

누군가 내게 3대 욕구의 우선순위를 정해보라면, 단연코 3순위는 식욕이다.


물론, 단순히 뭔가를 먹는 것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다르다. 그러면 제목처럼 넌 ‘식’은 즐기지 않지만 음식 꽤나 먹을 줄 아는 놈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릴 적, 큰 이모네 치킨집을 받아 운영하셨던 둘째 이모부는 가장 맛있는 부위라며 다리 살을 건네곤 했다. 그 이유는 내가 평소에 ‘퍽퍽 살’이라 불리던 가슴살만 먹었기 때문인데, 그보다 더 전에 큰 이모는 항상 퍽퍽 살만 먹는 나를 보곤 어디 가서 친척이 닭집 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놀리곤 했다.


요즘에야 운동이다 건강이다 해서 많이 소비되지만, 그 당시 치킨에서 닭 가슴살은 마지막까지 남겨지는 부위였고, 적어도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는 나만 먹는 부위였다.


내가 닭 가슴살을 고집했던 이유는 발라 먹기 귀찮은 나에게 그나마 뼈가 없거나 적은 최적의 부위였고, 무엇보다 닭다리나 뼈에 붙어 있던 부위에서 느껴지는 어떤 ‘향’ 혹은 ‘맛’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방금 만들어낸 요리의 경우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 부위는 향이 세게 나서 절대 먹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냄새는 식을수록 더 진해져, 어릴 때는 특히 식은 치킨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14일 오후 05_56_01.png




이 버릇 혹은 식성은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불편한 점이 하나 있다면 외식을 할 때 한 번씩 코를 뚫고 들어오는 그 냄새를 맡을 때, 닭이 신선하지 않은 지 얼었다 녹았다 한 건지 모를 상태에 돈 내고 사 먹는 입장에서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는 점이다.


이 까탈스러움은 돼지고기에서는 더 심했다. 만들어 놓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김치찌개 속 고기 냄새나 친구들과 먹는 제육볶음 속 돼지 냄새 등. 이게 ‘누린내’ 인지 미식가들이 말하는 ‘육향’ 인지 모르는 나는 편한 자리가 아닌 이상 그냥 꾹 참고 먹든가 그쪽으로는 젓가락을 향하지 않든가 하는 선택권 밖에 없었다.


그래도 눈치가 없진 않은 나는 어떤 때는 코로 숨을 쉬지 않으면서 빨리빨리 씹어 넘기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도 적잖이 겪곤 했다. 꽤 나이가 든 지금은 이것이 맛에 대한 경험 부족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집에서 요리를 해 먹다가 문득, 먹는 낙으로 살고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다는 친구들의 말이 떠올랐다. 꼭 그때부터는 아니었지만 그 뒤로는 궁금해 보이는 식재료를 사서 먹어보곤 한다.


예전에는 낯선 것들, 요리 결과가 맛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재료 자체의 호불호가 있는 것들, 이를테면 홍어나 천엽 뭐 그런 것들에 대해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먹고 죽는 거 아니면 먹어나 보자는 식이다.


그래야 계속 먹든 다시는 안 먹든 하니 말이다. 이 행위는 아는 게 많아질수록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어디서 주워듣고 깊게 공감하는 내 지론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문득 어릴 적 먹었던 양미리가 생각나서 검색하다가 뜬금없이 ‘아귀 간’을 보았다. 정확히는 ‘안키모’라는 아귀의 간으로 만든 일본 요리였다. 혹 하게 된 것은 5천 원 도하지 않는 저렴한, 호기심을 충족을 위해 지불할 만한 가격이었다.


‘바다의 푸아그라’ 니 홍어, 쥐치와 더불어 3대 생선 간이니 하는 것은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앞서 닭이나 돼지의 향에 대해 호들갑 떨던 것과는 무색하게 생선은 그래도 꽤 잘 먹는 편이다. 그래서 선뜻 돈을 주고 구매한 것 같다. 만약 검색 결과가 돼지의 특수부위였다면 거들떠도 안 보았을 것이다.


고작 4천 원짜리 음식에 설레어,

검색을 해보고 보통 쪽파와 함께 유자 폰즈 소스와 같이 먹는다는 것을 보았다. 소스를 활용할 만한 다른 요리는 잘 먹지 않는 터라, 재료 본연의 맛으로 부딪혀 보기로 한다.


설렜던 마음과는 달리 시식을 한 건 며칠 뒤였다. 소시지처럼 모양을 만들어 찐 일종의 가공 제품으로, 열면서 받은 첫인상은 ‘기름지다’였다. 부위가 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다.


냄새는 뭔가 생선 통조림 냄새가 났으며 딱히 군침이 도는 향은 아니었다. 결코 적지 않은 200g 정도의 결코 적지 않은 양이라 반 정도 먹어보기로 한다. 맛있다면 다음을 위한 아껴놓는 그게 아니라면 그래도 반은 먹었다는 나름 효율적인 계산인 셈.


쪽파와 와사비 그리고 혹시 몰라 간이 센 소스 두 가지를 곁들인다. 또한, 꽤나 추운 날이라 따듯하게 데운 정종도 함께 하기로 한다.


예전이라면 딱히 하지 않을, 아무것도 찍지 않은 첫 한입을 먹어본 결과는 ‘느끼하다’, 그리고 꽤 ‘비릿하다’였다. 후에는 쪽파와 한입, 와사비와 한입씩 먹어봤으나 그럼에도 느끼했다.


고향에서 쓰는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니길니길’ 혹은 ‘느글느글’ 한 맛이었다. 좀 데워 먹으면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미 위장이 충분히 기름진 상태라 관두었다.


비슷한 맛을 묘사해 본다면 꽁치구이를 먹다 보면 아마 내장 근처 부위 살에서 쌉싸름한 맛이 나는데 딱 그 맛이었다. 식감은 매시드포테이토와 순대를 먹을 때 같이 나오는 간 그 어디쯤이다.


물론 처음 한두 입정 도는 나쁘지 않았으며, 일식집에서 나온다면 ‘기대’가 되는 그런 맛이었다. 처음 한 두 입까지만 말이다.




뭐 어쨌거나 썩 나쁘지마는 경험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은 정확한 레시피대로 제대로 된 요리를 먹는 게 좋다는 생각인데 ‘안키모’는 맛에 대한 경험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이 더 컸던 터라 딱히 아쉬움은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도 나머지 반은 냉장실에 보관되어 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눈에 띄어 이를 악물고 못 본 척하고 있는데, 먹어야 한다면 굳이 똑같이는 먹고 싶지 않다.


잠깐, 어디 요리에 투입해 볼까 했으나 그 비린내에 설거지를 꽤 오래 해야 할 것 같아 관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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