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 없던 주말에 스치듯 떠오른 이 말은,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보통 행운은 불시에 찾아오지 않던가.
사소하게는 생각 없이 던진 영수증 뭉치가 한 번에 쓰레기 통에 골인하는 것부터 크게는 누구나 바라는 복권 당첨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와 정도도 다양하다. 물론 뭐가 됐든 거저먹을 순 없는 법이지만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로또 같은 도무지 이뤄질 것 같지 않은 것보다는 소소한 행운에 대한 것이다. 제목처럼 나의 ‘돌발적인’ 행동이 꽤 괜찮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던 경험이다.
대학 신입생시절, 입학 후 첫 발표 수업을 앞두고 있었다. 잠시 배경 설명을 추가해 보자. 나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내향인에 가깝다. 수다스러운 면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친구 사이 혹은 친구와 같이 있을 때 한정이다.
또, 불특정다수 앞에서 입을 떼는 순간 떨리는 목소리가 부끄러워서 발표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학창 시절, 내 번호에 해당하는 날짜가 다가오면 등교 때부터 긴장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다 같이 자료 조사를 마치고 PPT는 그중에 그래도 좀 해봤다는 동기가 맡아서 하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처음 해보는 조별 과제에 열심히는 하지만 별 도움은 안 되는 그런 역할이었다.
발표 당일, 어떻게든 내가 발표를 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이것은 우리 조가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한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려운 회피였다.
수업 시작 전 강의실에서 우리는 누가 발표를 맡을지 정하기로 했고 그 방법은 ‘사다리 타기’였다. 그저 발표를 피해보고자 발악이었던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하필이면 첫 순서인 우리 조의 발표시간. 그래도 발표자는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딱히 잘 한지 모르겠는 PPT는 다들 비슷하다는 합리화로 이 시간이 그저 빨리 끝나길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꿎게도 주최자는 우리가 정한 발표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교수님은 조원을 전부 앞으로 부르더니 가위바위보를 통해 발표자를 정하기로 한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꽤나 악랄하고 슬픈, 지금 생각하면 썩 괜찮은 방식이었다.
단 판에 승부가 나지 않았던 이 게임은, 살아남은 자에게는 구원을 남은 자에게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그렇게 마지막 두 명의 진검승부가 남았고, 당연히 그 주인공은 나와 여학생 한 명이었다.
나는 기사도나 매너 뭐 그런 소설이나 미디어 주인공 같은 속성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해코지를 하는 뭐 그런 악당적인 면모 또한 없다. 애초에 그럴 깜냥이 없는 보통 사람이다. 혹시, 같이 남은 여학생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그저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긴장감에 두뇌회로에 이상이 생기기라도 했는지 모를 행동을 하게 된다. 마지막 생존자를 가리기 앞서, ‘네가 할래?’라고 선뜻 물어보는 교수님의 마이크를 덥석 잡으며 하겠다는 말을 내뱉고 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좋게 해석해 보면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말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있던 내 무의식이 멋대로 튀어나왔을지도. 소설을 써보자면, 교수님이 내가 발표를 하도록 뭔가 심리학적으로 ‘제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결론을 말하자면 아무 말 대잔치 같았던 그 발표는 꽤 성공적이었다. 아니, 조금 더 자화자찬을 해보자면 우리 반에서 가장 괜찮았다. 물론 발표의 내용보다는 분위기가 컸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과제도 빼먹고 시험마저 말아먹었음에도 나는 좋은 학점을 받았다
아쉽게도, 그 후에 그런 극적인 발표는 없었다.
오히려 이 얄궂은 기억은 이후 내 머릿속에서 ‘운’은 쏙 빼 버리고 그 결과만 기억했다. 그래서 그 후에 몇 번의 발표는 말 그대로 ‘조져’ 버리기도 했다. 물론, 첫 발표가 그저 ‘운빨’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했던 게 좋은 결과라면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 긴 스토리를 적어 내려가는 이유는 의도치 않은 돌발적 상황이, 때때로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결말이 항상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행운과는 그렇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행운은 계획적으로 일어나지도, 자신이 만들어낼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이 경험을 행운이라 말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행동과 예상치 못한 결과가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내 회로가 변덕을 부리기를, 그게 나를 더 재밌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고 있다. 어쩌면 소소한 행운의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