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고향에 있을 머물 때였다. 졸업 후 취직이 쉽지 않은 기간에, 살고 있던 전셋집도 기간이 다해 본가로 내려갔다. 백수였기 때문에 크게 하는 일은 없었다.
더 큰 이유는 그즈음해서 이런저런 일이 겹쳐 마음의 건강도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집에 머물다 목적 없이 밖을 거닐다 집에 오는 게 일과라면 일과였다.
본가는 일반 주택이었는데 대문에 열쇠를 꽂을 때면 이따금 옆 틈사이로 길고양이가 도망치곤 했다. 길 가에 고양이들이 꽤 돌아다녔고 나를 포함해 사람들도 그저 적당히 쫓아내는 정도였다.
어머니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울음소리도 싫고 매서운 눈도 무서워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 마당에 잠시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뜯는 것이 가장 싫어하는 이유였다.
무더위가 조금 수그러든 8월의 어느 아침. 웬 녀석 하나가 마당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끔씩 문 옆으로 도망치던 그 녀석이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편이다. “지금 마주친 게 나인걸 다행인 줄 알아”라고 생각하며 냉동실에서 국물용 멸치 몇 마리를 꺼내 던져주었다.
이날 이후 녀석은 거의 매일, 뻔뻔하게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왔다. 멸치를 준 것은 어디까지나 변덕이었기 때문에, 가끔씩 주곤 했다.
알고 보니 어머니도 녀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내가 인지하기 한참 전부터 들락날락거렸고, 쓰레기봉투를 뜯어서 몇 번을 내쫓아냈다고 했다.
마당 저 멀리 퍼질러있던 녀석은 몇 번 맛본 멸치 맛이 익숙해졌는지 슬금슬금 현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어머니는 먹고 남은 음식을 던져주는 것으로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는다는 일종의 평화협정을 맺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고양이기에 가까이 가거나 만져 보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어쨌거나, 무더운 여름날 녀석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녀석이 우리 집에 오면서 꽤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뚝뚝한 우리 가족에게 대화거리를 만들어 주고, 쓰레기봉투 또한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았다. 순조로운 평화유지에 남는 음식 대신 사료를 주게 되었다.
또한, 당시 인생의 하강기에 빠져 있던 내게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괜한 의미부여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좋다.
이듬해, 봄이 오기 전. 매일을 거르지 않고 마당, 어떨 때는 거실까지 비집고 들어와 배를 까뒤집던 녀석의 방문이 갑자기 끊겼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냐 걱정했고, 나는 언젠가 오리라 생각했던 그 순간이 왔을까 싶어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얼마 뒤 괜한 기우였는지 녀석은 겨울비를 맞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짝짓기에 열중이었다. 그렇게 또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주며 몇 주 지나지 않아 다시 집에 찾아왔다.
그해 봄 아니나 다를까 짝꿍을 데리고 오더니 여름 무렵 새끼고양이를 포함 온 가족을 이끌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살갑던 녀석과는 다르게 짝꿍은 아직도 하악질을 한다.
함께 온 새끼는 녀석을 닮고, 짝꿍을 닮고, 누구도 닮지 않은 ‘턱시도’ 세 마리였다. 웃긴 점은 누구도 닮지 않은 턱시도는 성격이 녀석을 빼닮아, 얼마지 않아 넉살 좋게 다가왔다.
우리 집 쓰레기봉투가 무사했던 1여 년의 시간 동안 녀석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타협에 의한 관계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새끼들이 생긴 후로는 어머니는 ‘애비’ 라고 불렀다.
지칭을 할 뿐이지 실제로 그렇게 녀석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일은 없었다. 나도 이름으로 부르진 않지만 녀석을 빼닮은 새끼와 구분 짓기 위해 그냥 ‘큰놈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시간으로 치면 2년이 좀 안 되는 세 번째 해 봄에 난 직장을 잡아 타지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고향방문은 그래도 자주 하는 편이라, 두 달쯤 만에 집에 갔을 때였다.
큰놈이의 방문이 뜸하다는 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음날 오전에 녀석이 왔다. 잠만 자고 있던, 어딘가 늙고 힘없어 보이던 그 모습마저 반가웠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큰놈이의 방문이 더 뜸해졌다. 어머니는 길고양이 수명이 짧다는 걸 알게 되어, 혹시나 하는 말을 했다.
고양이는 새끼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물려주고 본인은 다른 영역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앞서의 경우가 아니라 이번엔 어쩌면 정말 못 볼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 역시도 걱정이 무색하게 큰놈이는 꾸준히 드나들었다. 다만 그 빈도가 좀 줄었고 부쩍 늙어 보였으며, 이따금 한쪽 다리를 절기도 했다.
두어달에 한번 본가에 가 큰놈이와 마주칠 때면, 오랜만이라 낯설어하는 듯 하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뿌리치진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어디론가 가버리곤 했다.
큰놈이가 본가를 방문한 지 햇수로 6년쯤 되던 몇 해 전 겨울이었다. 오랜만에 본 큰놈이는 어딘지 모르게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다. 매년 겨울철이면 뭘 먹고 다니는지 살이 통통하게 차 올랐던 그 모습과는 달랐다.
그게 큰놈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따금 산책길에 고양이와 마주친다. 대부분 도망가지만 아는 사이인 마냥 다가오는 녀석도 있다. 그럴 때면 문득 큰놈이와 큰놈이보다 더 살가웠던 새끼 하나가 생각난다.
큰놈이의 짝꿍은 아직도 본가에 오곤 한다. 큰놈이처럼 쓰레기봉투를 뜯진 않지만, 큰놈이와는 다르게 한 번도 곁을 준 적은 없다.
언제나 이 정도가 우리와의 거리라고 말하는 듯 선을 지킨다. 어쩌면, 그래서 큰놈이 보다 더 오래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부여하는 건 결국
마음에 자리잡는 것이다.
자동차나 스마트폰, 인형 등, 그 대상이 생물이나 무생물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마음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언젠가 다가올 헤어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난 녀석을 큰놈이라고 ‘생각’만 했는지 모른다. 물론, 부르지 않았어도 그렇게 명명했기에 이렇게 기억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나는 길고양이의 안위나 생태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삐쩍 마르거나, 먼지투성이인 고양이를 보고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책임지지 못할 일에 개입하지 않는 관조자일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놈이에 대해 길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모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고양이 큰놈이와 만난 게 아니다.
큰놈이가 된 고양이를 만났을 뿐이다.
이 말은 길에서 마주치는 생물이 고양이가 아니어도, 우리 집 쓰레기봉투를 뜯었던 것이 떠돌이 개였어도 별 상관이 없었다는 말이다.
큰놈이라 생각한 순간 정해졌을 터이나 한 번 더 의미부여를 하자면, 이것은 그저 오랜 동네친구 같던 큰놈이에 대한 회고록이자 일종의 ‘감사’의 글이다. 아쉬운 점은 내가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싶겠지만, ‘사람이 죽으면 키우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 던 어느 말처럼 되진 않을 것이란 소리다.
그게 조금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