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커피의 역사
카페를 자주 다닌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봐도 좋다.
오래전 제대 후 연애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다니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짝꿍은 수업이 끝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친구들과 카페를 갔다. 음료와 디저트 그리고 책을 펼쳐놓고 있는 모습은 그전까지 내 생활엔 없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여자친구와 만날 때면 하루에 기본 한번 이상 카페에 갔다. 그때 나는 커피 맛은 몰랐다. 도서관 자판기에서 뽑아 마신 인스턴트커피나 편의점에 파는 달달한 캔커피가 내가 아는 커피의 전부였다.
뭣도 모르고 시럽 없는 라떼를 처음 마셨을 때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한 무슨 맛으로 먹냐며 뺏어 먹었던 아메리카노의 첫맛도 새록새록하다. 아니, 도대체 돈 주고 왜 이런 걸 마시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카페를 간다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것은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저 데이트 장소 중 하나, 적당히 분위기 있는 조명, 잔잔한 음악 등 그저 그런 분위기가 좋았을 뿐이다.
이별 후에, 커피는 내게 멋스러움을 남겼다.
카페에 앉아 커피와 책과 함께 있는 모습이 멋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닐라에 머물 당시, 현지인 친구와 카페를 들락날락거리며 본격적으로 아메리카노를 접했다. 물론 그전에도 가끔 마시곤 했지만 그저 시럽 맛으로 때웠을 뿐이다.
한국에 비해 저렴한 커피 값도 한몫했다. 일주일에 3~4번을 갔기 때문에 커피 맛에 익숙해지기도, 습관이 되기도 했다.
자취를 시작하고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거의 매일 커피를 마셨다. 그럼에도 그때까지 앞서 말한 멋짐은 이행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사소한 이유로는 카페에서 혼자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때는 독서나 공부는 도서관에서 한다는 일종의 알고리즘이 박혀 있었다.
다른 이유는 혼자 카페에 가는 것이 소위 말하는 ‘쉽지 않음’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새내기 시절에는 혼자서 밥도 잘 먹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20대 중반이 되었다 한들 혼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이후 언제부터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어느새 자연스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자주 보는 무리에게 카페를 전염시키며,
이제는 수염 자국 진한 친구들끼리 모여도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게 무엇이든 반복되면
슬그머니 디테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게는 커피가 그러하다. 자릿값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며, 익숙해지며 조금씩 그 맛이 느껴졌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름의 로망이었던 멋스러움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엔 진한 향이 남았다.
그렇다고 까탈스럽게 프랜차이즈는 별로라든가 맛 좀 제대로 느끼는 혓바닥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맛본 커피 맛이 좋거나, 오늘따라 유난히 성공적인 브루잉 한잔에 기분이 좋으면 그뿐이다. 세세히 따질수록 본인만 피곤해진다.
혼자 일하게 되면서,
이제는 많은 시간을 카페에서 보낸다. 집에서는 공부나 일이 안된다는,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유구한 내 편견 탓이다. 눈치껏 적당한 시간을 머물다 보니 하루에 여러 번 카페를 가는 날도 적지 않다.
이 돈이면 그냥 사무실을 구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카페에 가지 않을 리는 없기 때문에 이 계획은 철회하기로 한다.
그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