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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불편한가

배려의 이면

by 이주인

2021.2.4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왜 가야 하는지 모를 의미 없는 외근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일을 할 때는 이 글과는 다르게 효율적인 걸 좋아한다. 적어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혼자 가니까 맘은 편하겠지 라는 생각이었으나, 불행히도 근처에 업무가 있던 부장이 동승을 제의한다. 고를 수 없는 선택지를 받고, 절대 운전대를 남에게 맡기지 않는 부장 덕에 편하게 가겠다며 재빠르게 거짓 웃음을 판다.


그렇게 갔다 오는 내내 매번 들었던 영웅담 같은 일화와 땀내 나는 프로젝트 성공 건에 대해 매번 그랬듯이 도돌이표로 반응을 한다. 이미 루틴처럼 되어 있지만, 이 작업은 꽤나 디테일이 필요하다.


상대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한껏 과장을 해야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감탄은 하되 은근슬쩍 혼잣말로 감상평을 남기듯 말해야 한다. 물론 그 대상들이 같이 있을 때 우선순위는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살다 보면 오래 알고 지낸 주변인들의 가벼운 제안 혹은 추천이 날아올 때가 있다. 내가 들었던 것들은 가볍게는 사진일이 있고 진지하게는 영업 직무였다.


대학 시절 친구들은 넌 영업 쪽이 잘 맞을 것 같으니 그쪽으로 진로를 잡아보면 어떠냐 했고, 일을 할 때는 회사 대표가 영업 쪽을 맡아볼 생각이 없냐 권하기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는 적당한 사교성과 리액션이 괜찮아서, 직장에서는 앞서 말했듯 딱히 의도하진 않았던 ‘처세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에둘러 거절의사를 내비치는 것은 내가 모르는 분야기도 하거니와, 속된 말로 ‘싸바싸바’를 하고 난 뒤 오는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도 예상 밖의 스트레스를 적잖이 모아 퇴근길에 올랐다. 늘 그래왔듯 저녁을 건너뛰고 카페로 향한다. 저녁식사 대용은 아니다.


항상 집을 나와서 들어가는 순간 하루 일과가 끝나는 느낌이 들어서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퇴근 후 뭐든 채워 넣어야 할 곳에 커피가 있을 뿐이다.


보통은 집에 차를 놓고 걸어가지만, 가방이 두 개라 여의치 않다. 습관처럼 가는 카페는 주차 자리가 협소해 한번 보고는 근처 골목가로 들어섰다. 하지만, 근처는 모두 주택가라 주차할 곳이 마땅지 않다.


그렇게 조금 움직이다가 누군가의 주택 담 아래 주차를 시도했다. 주차금지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나는 그 뒤쪽 공간에 차를 붙일 것이니 큰 문제는 없다.


그때 바로 뒤에 SUV차량 하나가 천천히 오더니 대기를 하고 있다. 혹시, 지나갈 공간이 좁은가 싶어 서둘러 주차를 하고는 내릴 준비를 했다.


처음엔 그 차가 천천히 지나는 통에 초행길이나, 초보 운전인가 싶었다. 차 주인은 간격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지나가지 않고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오려는 듯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생각했다.


“동네 주민이면 근처 차는 얼추 알 텐데,

그래서 비켜달라고 내리는 건가”

“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으니 그냥 다른 데로 가자”


운전석에서 중년 남성분이 내렸다. 문을 열어 놓은 체 본인의 차 안을 향해 몇 초간 시선이 멈춰있는 듯하더니, 목발을 하나 꺼내 한쪽 겨드랑이에 대고서 뒤뚱뒤뚱 걸으며 내 차 옆으로 왔다.


시동을 끄지 않아 적잖은 소음에, 창문을 내리는 중에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한데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다 내리고는


“(차를) 대시는 자린가요?”

“바로 빼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바로 앞에 차를 대기 위해 조금만 뒤로 차를 이동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뒤로 와서 후진 신호를 봐주셨다.


시동을 끄고 내리자,

비로소 또렷한 음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차는 해도 되는데 두대가 차를 대는 곳이라
조금 뒤로 주차해야 해요”


어르신은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 말에 나도 웃음에 동참하며 잠깐 근처에 들른 거라 몰랐다고 말했다. 그렇게 서로 웃으며 상황은 마무리됐다.




5분 남짓 걸어온 카페에 앉아 으레 하던 공부나 작업을 시작하려 노트북 펼친다. 하지만 좀처럼 키보드에 손이 가지 않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사회가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 뭔가 날이 선 분위기. 어르신의 차 문이 열릴 때 나는 생각했다. 뭐라고 따지면 퉁명스럽게 차를 뺀다고 말해야겠다고…


잠시 후, 어르신의 몸이 불편하신 것을 본 순간 그냥 차를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삭막한 분위기에 동승하듯 낯선 이의 행동에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것과 몸이 불편하신 걸 보고 내 마음대로 상황을 판단해 버린 것이. 난 여태 누군가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조금 낮은 위치로 바라봤던 것은 아닌가.


그날 저녁 해프닝의 잘못된 것은 내 마음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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