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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여는 글

by 이주인

삼십 대가 저물어 가는 나이임에도 학창 시절이 길어서 인지 아니면 그리워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시계는 3월에 이르러서야 한 해가 시작된다고 느낀다.


3월이라고는 했지만 어쩌면 겨울이 물러가는, 불어오는 바람이 더 이상 차갑지만은 봄이 내게는 뭐든 시작이라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과 같은 글을 써왔던 이유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쓴 처음은 ‘기록’에서 출발했다. 학생 때부터 드문드문 PC에 일기를 써왔고, 20대 초반부터는 다이어리에 쓰기 시작했다.


어느 기점으로 기록 외 것들도 쓰기 시작했는데, 적당한 블로그를 만들고 비정기적으로 글을 쓰곤 했다. 올리는 글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이었고 나머지는 이런저런 감상평, 리뷰였다.


딱히 영양가 없는 글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뭔가 유입을 위한 정성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크게 노력을 들이지 않은 이유는 ‘과대포장’ 같은 느낌이 싫어서였다. 우연찮게 봤는데 괜찮은 것은 좋지만, 뭐 대단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더니 빈 수레가 요란한 그런 모양 빠지는 일은 너무 싫었다.


‘자 내가 이렇게 글을 썼으니 한번 봐줘요’

라는 속마음을 숨기고는

‘뭐 좀 썼는 데, 보려면 보고’라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자세는 블로그에만 국한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생각을 ‘쓴다’는 것과 그 글을 올리는 ‘블로그를 한다’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방문자가 별로 없어도 꽤 꾸준히 글을 썼다.


서른 초반쯤 블로그를, 구체적으로는 글을 쓰는 행위를 멈췄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이 뭔가 쓸모 없는 ‘쓰레기’를 생산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그저 내가 귀한 전기를 사용해서, 데이터와 트래픽을 소모해 올리는 글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과장이 들어가 있지만 꽤 진지한 고민이었다.


여기에 더해 사는 게 바빠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어쨌거나 시간이 지나 내가 글을 써왔던 것이 생각보다 얻은 게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때 기자 생활을 했던 오랜 벗은 먹고살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며 말하기를, 일을 하면서 말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어느 순간 말하는 것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했다.


내게는 글이 그러했다. 더 나아가 말이나 생각 또한 뭔가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느낌이 들었다. 명확한 인과가 있겠냐마는 결국 아무것도 쓰지 않는 지금 잃은 것은 적지 않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넌 잃은 게 많아서 다시 뭐 라도 쓰는 것이냐 하면 그런 의미는 아니다. 기록 외 내가 써온 것들에 큰 뜻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쓰레기’라고 하기엔 내 글에게 너무 미안하고 ‘뜻’ 있다고 하기엔 좀 가볍다.


그렇기에 내가 모아 온 것들을 풀어보며 의미가 있을만한, 이를테면 ‘분류’를 해보는 것이다. 또 그래서 그 분류를 굳이 여기서 하는 것이냐면, ‘심심하면 보고 가줘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내 인생 어쩌면 우리 인생 대부분이 그러했을, 생각은 하고 움직이지 않던 것을 내 특성을 들먹여가며 시작하기로 한다.


목적은 없다.

사는 게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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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