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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한 코의 균형점

우리의 외면 관찰기

by 이주인 Mar 05. 2025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쯤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내적인 문제보다 고민인 것이 여드름이었다. 그때는 잘 몰라서 아무런 생각 없이 손으로 여드름을 짰다. 지나고 보면 득 보다 실이 많았던 자가시술을 위해 거울 앞에 자주 있었는데, 여드름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것이 코에 생겨난 블랙헤드였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은 복권번호 말고도 꽤나 많다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은 복권번호 말고도 꽤나 많다


이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분명 매끈하던 코에 딸기 씨앗처럼, 하지만 검은 점 같은 것들이 생겨난 것은 적잖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금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압출을 하게 되었고 그중 한 두 가지는 지금도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앞서 귀 모양새를 관찰할 때도 그랬지만 이전까지는 딱히 이렇게 신체의 특정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볼 일이 없었다. 어린 시절 친척누나가 친척형에게 콧대 없는 놈이라고 놀릴 때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 형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나 낮은 콧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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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코는 이렇다 할 특징은 없어 보인다. 매부리코, 들창코, 화살코와 같은 모양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콧대가 조금 낮고 콧방울은 꽤 뭉툭하게 생겼다.


 내 오랜 벗 중 하나는 콧구멍이 유난히 컸다. 콧구멍이 큰 만큼 코도 상당히 큰 편인데, 날카롭게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모양은 아니고 좌우로 널찍한 코였다. 단순히 얼굴 크기에 비해 큰 편이 아닌 절대적인 크기 자체가 컸는데, 동전이 들어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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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술자리에서 누군가 콧구멍에 대해 언급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공연을 요청한다. 500원짜리를 하나 건네면 거짓말처럼 동전은 콧구멍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이렇게 되면 500원은 짧고 임팩트 있는 마술쇼의 관람료로 지불된다.


이십 대의 끝 무렵 어느 날 친구는 콧구멍을 줄이고 왔다. 보통 코 손을 댄다고 하면 콧대나 콧방울 정도 손을 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구멍마저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아무튼 내 친구는 코성형을 하고 왔고, 그 말은 더 이상 500원이 사라지는 마술쇼는 관람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가끔 500원을 보면 친구의 마술쇼가 떠오른다가끔 500원을 보면 친구의 마술쇼가 떠오른다


이전까지 친구가 딱히 외모에 신경 쓰고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뭔가 여태 장기자랑을 보고 웃던 것이 조금은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하는 김에 필러 시술도 같이 받아서 콧대도 조금 높여봤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인상이 달라 보이긴 했다. 


 아무튼, 본인을 업그레이드하고 온 친구를 보며 나도 한 때 코에 손을 대볼까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살면서 딱히 성형에 대한 필요성이나 관심은 크게 없었지만, 앞서 말한 친척형과의 옛 기억을 더듬다 나도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진지하진 않은 고민으로 친구에게 말하면, 필러 정도 도전해 보기를 추천하지만 언제나 가볍게 지나가는 이야기 정도로 마무리하곤 했다.


보다 예전에, 학교 도서관 휴게실에서 가깝게 지내는 형과 잡담을 할 때였다.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문득 내가 말했다. “나도 콧대나 좀 높여 볼까요?” 그 말은 들은 형은 “이미 완벽한데 뭘 높여"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형의 대답은 내 외모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이미 눈, 코, 입은 그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코 하나 바꿔서 뭐 하냐는 식의 논리였다. 그래, 어차피 밋밋한 거면 조화롭게 밋밋한 게 낫지라며 서로 웃고 넘어갔다.


 문득 조화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살면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직장 선임은 왜 유독 한 파일만 다른 방식으로 했는지, 가을 오후 군락지에 유독 혼자만 위로 솟은 코스모스는 왜 홀로 저리 피어있는지 뭐 그런 것들. 바르지 않거나, 정렬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의 인상은 꽤나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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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은 추가 작업이 필요했던 파일과 혼자 솟아 있어 좀 더 특별해 보이는 풍경처럼 시간을 두고 보면 그게 무엇이든 조금은 이해가 된다. 뭐 그렇게 접근해 보면 “이 코가 이렇게 붙어 있는 것도 응당 이유가 있겠지” 라며 평소와는 달리 내 코만큼 낮은 각도로 거울을 비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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