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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Nov 17. 2019

외국 이발기 04

여행 짐을 싸면서,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전기이발기도 챙겨갈까?” 아내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냥 현지에 가서 해결하라고 했다. 물가 비싼 나라로 가는 것도 아니니까 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나는 돈 걱정을 하는 게 아니었다. 두 번의 실패 경험담을 지닌 내 머리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전기이발기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물론 치앙마이에 미용실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남성 전문 미용실도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격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렴한 비용이 사람을 더 망설이게 했다. 미용실을 지나칠 때마다, 하와이에서 겪었던 악몽이 자꾸 떠올랐다. 할머니 미용사의 억센 억양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긴 머리가 유독 거슬리던 날. 치앙마이를 떠나 베트남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위기가 왔다. 호이안의 유명한 버거를 먹고 나자, 갑자기 없던 용기가 불쑥 솟아났다. 아내에게 오늘은 기필코 머리를 깎겠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깎은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태국의 스님들처럼 깔끔하게 삭발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하면서, 깔깔 소리 내며 웃었다.


신기하게도, 머리를 깎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남성 전용 미용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정처 없이 걷던 골목길에서. 여행자들은 잘 다니지 않을 듯한, 생애 한 번 지날까 말까 한 골목길이었다. 미용실 안에서 머리를 깎고 있던 미용사가 나를 보자마자, 씩 웃었다. 어서 오시게나. 기다리고 있었네. 그런 뉘앙스의 웃음이었다. 나는 홀린 사람처럼 미용실 안으로 들어섰다.


두 명의 미용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 세 명의 남자 손님이 있었다. 미용실 안에 외국인은 나와 아내뿐이었다. 망설이는 내게 아내는 여기서 머리를 자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유를 묻는 내게, 아내는 밖은 더우니까 그냥 여기서 자르라고 했다.

아내의 말처럼 미용실 안은 시원했다. 미용실에서 바라본 골목길은 정말 더웠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한낮에 이렇게 시원한 곳은 베트남에서 처음이었다. 


미용사에게 요구사항을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는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대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내게 물었다. 한국의 남쪽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기는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호이안은 어떠냐고 묻길래, 나는 더운 날씨 빼고 다 좋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오늘은 많이 덥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흠칫 놀랐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도, 나도,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동안 대화를 나눌 만큼 충분한 영어 실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했다. 본업에 충실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 몸에 있던 것들이 잘려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 머리 자르는 것을 바라보는듯한 기분으로.


이발이 끝난 뒤의 나는 놀랍도록 말끔해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당신은 그 누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미용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하와이에서, 밴쿠버에서 이미 머리를 잘라본 적이 있다고. 내가 베트남에 대해 선입견을 품고 있어서 미안했다고. 할 말은 많았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대신 팁을 듬뿍 주었다. 내가 그에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칭찬이었다. 미용실을 나서는 우리에게 그가 말했다. 다시 오라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머리를 깎고 나자, 베트남의 한낮의 더위도 꽤 견딜 만했다. 아내도 덥다고 더 투덜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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