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인민박집의 비밀

감춰져 있던 것들이 날이 밝자 보이기 시작했다

by muum


주인 아들은 우리를 성심성의껏 응대했다. 주인 측 사정이었지만, 원래 주기로 했던 방보다 더 좋은 방을 내주기도 했다. 음식도 마음껏 먹으라고 했고,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라고 했다. 자기가 손수 공사한 집 안과 작업실을 보여주면서,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는 친절했고, 상냥했으며, 진심으로 손님을 응대했다. 우리는 틈날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와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하와이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첫날밤, 잠자리에 들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좋은 숙소를 잘 구한 것 같다고. 당신이 숙소를 고르는 안목은 뛰어난 것 같다고.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감춰져 있던 것들이, 날이 밝자마자 보이기 시작했다. 간밤에는, 무시하고 지나쳤던 것들이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1층 주방 바로 옆 방이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주방부터 둘러보았다. 서둘러 아침을 준비해야 했고, 마음껏 음식을 먹어도 좋다는 말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주방은 난잡하고 불결했다. 곳곳에 음식이 놓여 있었는데,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음식은 부패되고, 한결같이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그곳은,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주방 같았다. 오래전에 시간이 멈춘 부엌이었다. 구역질을 참고서,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들어 있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냉장고 안 음식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DSC07646.jpg


며칠간의 관찰의 결과, 그 집에 머무는 사람은 우리까지 모두 일곱 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주인 둘, 나머지는 손님이었다. 우리만 빼고, 모두 장기투숙객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주방이 이런 상태라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모두들 눈 뜬 장님이거나, 모두들 마법에 걸려 있거나, 우리 둘만 정상이거나, 우리 둘 만 비정상이어야 했다. 고민이 되었다. 주방을 그대로 둬야 하는지, 손을 대야 하는지. 이 상황을 따져야 하는지, 모른 체해야 하는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이 집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전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로 했다. 비밀을 알아내기 전까지, 우리는 신중해야 했다.


그 집에 또 다른 부엌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다음 날 저녁이었다. 주인 아들에게 넌지시 주방은 어디를 써야 하느냐고 물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지하 1층에 있는 작은 부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비밀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부엌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곰팡이 포자가 날아다니는 부엌이 존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모두들 1층 부엌을 모른 체했다.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손님들이 못 본 체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1층의 주방을 사용할 일도 없었고, 치울 의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과 아들, 아들의 여자 친구까지 주방을 외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떠나는 날까지, 1층의 주방은 결국 달라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5일 동안 머물면서, 주인 아들은 우리에게 하와이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다. 아들은 하와이에 살고 싶어 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못마땅해했다. 아들에게 우리는 하와이의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귀한 손님이었지만, 어머니에게 우리는 불청객이었다. 우리는 아들에게 헛된 상상을 심어줄지도 모르는 위험한 손님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 설사 우리가 그렇게 비쳤어도, 어쨌든 손님이었다. 돈을 지불하고, 숙박을 하는 손님이었다. 대접을 받아야 할 손님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했고, 해서는 안될 부탁도 했다. 처음에는 몸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묵는 방이 더 좋은 방이라서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했을 때, 아내에게 자신의 방 좀 정리해 달라는 무례한 부탁을 했을 때, 우리가 망가뜨리지도 않은 화장실 변기를 고쳐내라고 억지를 부렸을 때, 떠나는 날 아침부터 짐을 빨리 빼라고 재촉했을 때, 하마터면 화를 참지 못할 뻔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초대해 준 그의 아들을 떠올리면서 참고 또 참았다.


마지막 날, 너무 화가 나서 결국 실수를 하나 하고 말았다. 서두르는 바람에 아내가 가장 아끼는 양산을 그곳에 두고 온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열차를 타기 직전이었다. 다시 찾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순간이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그곳에 일어났던 모든 것을 양산과 함께 그곳에 두고 왔다고 생각하라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keyword
이전 10화캐나다인은 내복도 안 입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