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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Mar 30. 2017

그라피티 엘리와 온타리오 미술관

토론토 거리의 화가들과 미술관 속 화가들을 만나다

흥이 오르는데, 이대로 파티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잰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그라피티 엘리라고 불리는 벽화 거리였다. 차이나타운에서 남동방향으로 500m 내려가면 나타나는 곳이다. 퀸 스트리트 웨스트 (Queen street west) 바로 아래 골목에 있다. 


숨 막히게 멋진 곳이었다. 강렬한 원색의 벽화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거리의 이름 없는 예술가들이 남겨놓은 숨결이, 손만 뻗으면 잡힐 것만 같았다. 아마추어 수준의 벽화부터,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인 벽화까지, 장르와 기법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벽화가 영국의 거리화가 뱅크시의 작품처럼 보인다. 어떤 작품이든지 그 앞에 서기만 하면, 저절로 힙합 모션이 튀어나오는 곳. 아무리 어설픈 짓을 해도,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되는 곳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렇게 많은 벽화가 존재하려면, 공공기관의 암묵적인 묵인이나 공식적인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묵인이든, 공인이든, 어떤 경우라도, 부럽긴 매한가지였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하루였는데, 남아 있는 선물이 더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차이나타운에 도착하기 전으로 잠시 돌아가야 한다. 오후 4시경, 세인트 패트릭스 스트리트를 지나쳐서, 맥카울 스트리트를 향해 갈 무렵이었다. Artist’s Materials라는 상점에 전시되어 있는 해골을 지나쳐서, Sumac이라는 테이크아웃 음식점 앞을 걷고 있을 때였다. 다음 상점은 뭐가 나올까? 그런 시답잖은 ‘상점 예측 놀이'를 하고 있는데, 인상적이고 기묘한 건물이 갑자기 등장했다. 예상 밖의 반전이었다. 


바람에 지붕이 막 벗겨져서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한 건물이었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 또 다른 이유는, 건물 앞에 놓여 있는 조각 때문이었다. '내 뒤에 있는 건물은 평범한 건물이 아니다' 그런 메시지를 잔뜩 품은 청동 조각 하나가, 발걸음을 딱 멈추게 만들었다. 그 건물은 바로 온타리오 미술관 (Art Gallery of Ontario)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온타리오 미술관 (Art Gallery Ontario)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소문난 음식의 식당은 못 본 척하더라도, 우연히 마주친 미술관을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성인 입장료가 19.5달러나 된다. 더군다나 특별전시를 제외한 입장료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입장료가 비쌌다. 잠시 갈등이 됐지만, 저녁을 굶는 한이 있더라도 입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뒤돌아 나가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40달러를 꺼내 들고, 표를 막 끊으려는 순간. 


"잠깐만! 잠깐만!" 촉이 좋은, 아내가 나를 급하게 멈춰 세웠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후에는 무료입장이래." 아내가 놀라운 정보를 찾아냈다. 아마 조금만 늦었어도, 비싸게 구입한 표를 손에 쥐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온타리오 미술관을 방문했던 날이 무슨 요일이었냐면? 그렇다. 바로 수요일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재빠른 동작으로, 40달러를 다시 지갑에 넣었다. 오후 6시에 미술관을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거금의 입장료를 절약한 아내는, 오늘 밤 맛있는 것을 먹을 자격이 충분했다. 


오후 6시 정각. 우리는 온타리오 미술관 앞에 서 있었다. 미술관 앞은 인산인해다. 토론토 시민들의 모든 스케줄이 ‘수요일 오후 6시. 온타리오 미술관 앞’으로 맞춰져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면, 오늘 저녁 ‘예술품을 사랑하는 가난한 토론토 사람들의 모임'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만국 공통어인가 보다. 어쨌든 우리도 그 인파에 보란 듯이 섞여 있었다. 


미술관 입장은 6시가 좀 넘어서 시작되었다. 입장하는 내내, 꽤 시간이 지체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미술관 안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서비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보관서비스다. 원하는 관람객은 누구나, 자신의 옷과 짐을 보관할 수 있었다. 옷과 가방을 맡기면, 번호표를 직원이 나눠줬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2달러를 받기는 했지만, 훌륭한 서비스였다. 무거운 가방과 외투를 입고서 미술관 관람을 해본 사람은, 그 고충을 알 것이다. 가방과 외투를 벗고서 관람하는 것과, 입고하는 것은 정말 천지 차이라는 것을 말이다. 


미술관은 모두 5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폐장시간이 오후 9시였으니, 관람시간은 2시간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미술관 전체를 다 둘러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첫 방문에, 미리 알고 온 정보도 거의 없었다. 미리 알고 온 정보라고는 딱 이 한 줄 뿐이었다. ‘온타리오 미술관은 1900년에 문을 연 사설 미술관으로 현재에는 지난 20세기에 걸친 8만여 점의 예술 작품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떤 화가의 작품이 있는지도 몰랐고, 어디에 걸려 있는지도 몰랐다. 의도치 않게, 마음을 비우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욕심을 부려봤자 소용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작품을 대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선입견을 가지지 않은 백치의 마음가짐으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본다.



시대를 거스르면서 이렇게 많은 화가들의 그림들을 만나는 건,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다. 그림과 조각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 많은 예술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울 뿐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까? 이 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됐는지, 많은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2시간 30분 동안, 결국 1층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1층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보았고, 유명한 조각도 보았다. 하지만, 우리의 눈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았던 것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조각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유대인들의 게토(ghetto) 생활이 기록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된 흑백사진 속의 사람들이, 마음을 움켜쥐고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유명한 그림의 감동보다도, 유명한 화가의 예술혼보다도, 사진 속의 사람들이 주는 울림이 더 컸다. 그 생생한 기록 앞에서, 마음이 한없이 숙연해졌다.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게토 사진전>을 보다


킨톤 라멘 (Kinton Ramen). 미술관에서 가장 가까운 맛집이 어디냐고 트립어드바이저에게 물었더니, 이 곳을 알려준다. 그곳은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북쪽으로 350m 정도 떨어져 있는 라멘집이었다. 더 이상 멀리 갈 자신도 없었고, 더 이상 맛있는 걸 찾을 여력도 없었다. "눈 오는 날에는 역시 라멘이지." 다행히 아내도 맞장구를 쳐준다. 


식당이라고는 하나도 있을 곳 같지 않은 골목을 구석구석 걷는다. 혹시 저기가 라멘집인가? 구석에 숨어 있는 까만 간판을 찾아낸다. 까만 간판에 쓰여 있는 金とん이라는 글씨를 보고 처음에는 라멘집인가 긴가민가 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잠자고 있던 후각세포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손님이 꽤 많다. 일본 라멘을 먹고 있는 캐나다 사람들이라니, 그 모습이 묘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 집. 주문 방법이 낯설었다. 절차도 까다로웠다. 라멘을 먹어 본 경험이라고는 오사카에서 먹어본 게 유일했던 우리였는데,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러게, 주문 방법이 복잡하네."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종업원이 대뜸 묻는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아! 네. 한국사람 맞아요." "주문은 이렇게 하시면 돼요." 토론토 골목에 숨어있는 일본 라멘집에서 한국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집에서 한국사람 보기 정말 힘든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근처 미술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찾았어요." "다음 주에 저 버스 타고 뉴욕 가요. 여기서 뉴욕까지 40달러면 가거든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라멘을 서빙해 준 여학생도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일본 라멘보다 더욱 반가웠던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유학생 두 명을 만난 것이었다. 열심히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겠지만, 조용히 팁을 놓고 나왔다. 생애 처음으로 팁다운 팁을 사용해봤다. 무사히 뉴욕까지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사히 유학을 마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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