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펠라트는 왜 카사 로마를 떠나게 되었을까?
카사 로마 내부에는 98개의 방, 서재, 식물원, 장미정원, 비밀 터널, 마구간 등이 있었다. (방이 98개가 맞는지 세다가 잊어버렸다)
오붓하게 가족과 살기 위해서, 헨리 펠라트가 이렇게 넓은 집을 지었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지었을 테고, 성 안에서 많은 손님들과 파티를 즐겼을 것이다. 그것이 98개의 방 중에서 꽤 많은 방이 손님방으로 지어진 이유일 것이다. 손님방을 둘러보다가 놀랐던 건 비슷한 스타일의 방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유럽 스타일부터 중국 스타일까지 전 세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다양한 취향을 수집하고 과시하는 주인장의 욕심 덕분에 방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방을 나설 때마다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당시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까사 로마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했겠지?"
"그건, 알 수 없지."
"왜 알 수가 없어?"
"부자들만 이곳을 들락거렸을 리 없잖아."
"무슨 말이야?"
"이 정도 저택을 유지하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거라고."
아내의 질문에 막상 대답은 했지만,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태어났어도 나는 부자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해 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헨리 펠라트가 금수저는 아니었지?"
"응! 부모한테 큰 재산을 상속받은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사업체를 물려받기는 했어."
당구대 위에서 포켓볼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작은 위안을 얻는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48달러로 그의 유산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초대 여부를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다.
서재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바닥에서는 의자들이 위태로운 곡예를 하고 있다. 누군가 겹겹이 쌓아 올린 의자들을 보니, 의자를 보관하는 방법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관심을 잡아끈 건 따로 있었다. 바닥과 천장이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설명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바닥과 천장 때문이었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W 모양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나무 바닥은 처음 보는 낯선 방식이었다. 무늬의 변화까지 생각하며 만든 공을 들인 바닥이었다. 작고 미묘한 차이가 공간을 색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시선을 천천히 끌어올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서 천장을 정면으로 보는 순간, 이 공간이 지닌 무게감의 비밀도 풀 수 있었다. 천장은 현란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한가운데 가문의 상징 같은 무늬도 눈에 띄었다. 그동안 깔끔한 천장만 바라보고 살아와서 그런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잠시 바닥에 드러누워 바라보고 싶을 정도였다.
온실에 들어서는 순간,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눈에 봐도 관리가 잘 된 온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인데도 다양한 식물의 향이 온몸을 덮쳐왔다.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당시에 이 정도 크기의 온실을 만들고 유지했다는 건, 부를 뛰어넘는 애정 없이는 불가능해 보였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식물은 죽는다. 죽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금은 누가 관리하는지 모르지만, 온실 안에는 식물들은 건강해 보였다.
바닥의 식물과 달리, 온실 천장에서는 죽지 않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다시 현기증이 도졌다. 헨리 펠라트의 부인이 온실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내친김에 지하에 있는 터널도 보고 싶었다. 막상 욕심은 냈지만, 터널은 입구부터 스산했다. 아내는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앙탈을 부렸다. 그럴 만도 했다. 당장이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듯 한 분위기였다.
"세상에 유령은 없어! 유령 같은 건 없다고."
일부러 아내 들으라고 큰소리로 여러 차례 소리를 질렀다. 사실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허풍 가득한 내 목소리가 지하 터널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소리는 굴절되고, 중첩되고, 증폭된다. 고요히 잠들어 있던 터널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마치 유령이 대답하는 것 같다. 갑자기 기분이 오싹해진다.
얼마나 걸었을까? 먼발치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살짝 실눈을 떠 보니, 멀리 맞은편에서 검은 그림자가 걸어오고 있는 중이다. 사람인지, 유령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가 갑자기 손을 힘껏 움켜쥐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오는 중이다.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지자,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겨우 알 수 있었다. 아내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시 힘겹게 한걸음을 내딛는다. 마구간까지 가는 이 비밀통로는 자그마치 250m나 되었다.
다행히도 터널을 힘들게 맘 졸이면서 온 보람이 있었다. 마구간에 있었던 것은 말이 아니라 자동차였다. 그냥 쉽게 볼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클래식한 올드카가 2대나 있었다. 자동차에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절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차 안에 놓여 있던 Do not Touch라는 푯말이 황급히 제지하지만 않았다면, 이미 차는 손때로 가득 찼을지도 모른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1910년에 나온 Maxwell Model Q Standard와 1920년에 나온 Ford Model T Woody 앞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아내는 빨간색 금속 바디에 금색 금속 프레임이 조화를 이룬 Maxwell Model Q Standard가 더 끌린다고 했다. 나는 블랙 금속 바디와 나무가 조화를 이룬 Ford Model T Woody가 더 마음에 들었다. Ford Model T Woody는 10년이나 더 뒤에 나온 모델인데도, 더 클래식하고 올드한 맛이 났다. 나무 재질로 되어 있는 몸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로 눈 앞에서 보는데도, 사람이 만든 자동차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문 닫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카사 로마의 꼭대기였다. 토론토의 시내가 조망되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나선 계단을 올라야 했다. 위험한 계단이 문제가 아니었다.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몸이 서서히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냉동창고 안으로 스스로 몸을 집어넣는 기분이었다.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얼은 벽, 벽에 적혀 있는 낙서, 하얗게 서리가 껴 있는 창문,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 모든 게 카사 로마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순간, 그곳이 가장 카사 로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부자의 공간이 아니었다. 부자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성을 관리하는 사람이 묵는 곳이었다. 추위와 싸우며 성을 지키는 사람이 머무는 곳이었다. 카사 로마에서 제일 높은 곳이었지만, 잊힌 곳이었다. 살아생전에 헨리 펠라트는 단 한 번도 이 곳에 올라와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부인도, 그의 가족들도, 그의 친구들도.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창 밖의 풍경을 보았다. 얼어가는 창문을 하얀 입김으로 겨우 녹이며, 눈이 시도록 토론토를 바라보았다.
기념품 가게를 끝으로 카사 로마를 나오니, 폐장시간인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출구를 나서는 순간, 별안간 마음이 쓸쓸해졌다.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부귀영화와 명성의 부질없음 따위의 싸구려 감상 때문만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저 관광명소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 카사로마가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 유독 극성스러운 저녁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세인트로렌스 마켓. 저녁도 먹고, 시장도 구경할 요량이었다. 1라인을 타고 King Station에서 내리니, 6시가 훌쩍 넘었다. 역에서 시장까지는 1km가 채 안 되는 거리. 해가 저물고 나니, 유독 추웠던 오늘이 더 매섭다. 온몸을 꽁꽁 싸매고, 거리를 서둘러 걸었다.
세인트로렌스 마켓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 이제 곧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 하나만으로, 힘껏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기대했던 마켓의 모습이 아니었다. 불은 켜져 있는데, 마켓에 활기가 하나도 없었다. 설상가상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리 중인 몇몇 상점 주인들만이 분주하게 움직일 뿐이다. 7시에 폐점한다는 정보만 믿고 찾아왔는데, 난감했다. 오는 내내 조금만 참으라고 아내를 수차례 다독이며 왔는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등지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돌아볼 자신이 없었다.
부랴부랴 확인한 정보에 의하면, 세인트로렌스 마켓이 7시까지 하는 날은 금요일 하루가 유일했다. 화, 수, 목은 6시까지, 토요일은 5시까지였다. 일요일, 월요일은 휴무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안타깝게도, 목요일이었다.
"내가 요일을 착각했네. 오늘이 금요일인 줄 알았어."
때늦은 수습을 해 보지만, 아내의 표정은 좀체 밝아지지 않는다.
"혹시 아직까지 문 연 식당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시장 안을 부리나케 걸어본다. 이미 문을 닫은 정육점, 이미 문을 닫은 식료품점, 이미 문을 닫은 야채가게들이 줄기차게 우리를 맞이해줬다.
"뭐해? 사진 안 찍어? 시장에 왔으면 사진을 찍어야지. 우리 생애에 언제 또 문 닫은 세인트로렌스 마켓 사진을 찍을 수 있겠어? 안 그래? 문 닫은 마켓도 꽤 볼만하네."
풀이 죽어 있던 나에게 하해와 같은 아내의 은총이 내려진다. 정신이 번쩍 든다. 놀라운 속도로 카메라를 꺼내 고, 셔터스피드보다 떠 빠른 속도로 사진을 찍는다. 세인트로렌스 마켓 안에 셔터 소리가 신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찰칵! 찰칵!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