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여행을 풍부하게 만든다
토론토에는 MaRS라는 건물이 있다. 인류의 꿈, 화성(火星)과 똑같은 철자(Mars)를 지녔다.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특이했던 건물 이름 탓만은 아니다. 특별한 인연과 각별한 기억 때문이다.
건물의 정식 명칭은 MaRS Innovation. 이런 곳에 용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두 번씩이나 이곳을 방문해야 했다.
퀸즈파크역에서 나오자마자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다. 그때 눈앞에 처음 마주했던 건물이 MaRS였다. 눈길을 확 사로잡을 만큼 특이한 것도 없었다. 대도시 어디서나 마주칠법한 평범한 건물이었다. 적어도 여행자들이 일부러 발품을 팔 만한 곳은 아니었다.
잠시 추위도 피할 겸 안에 들어섰는데, 뭔가 이상했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따뜻하지 않았다. 쾌적하다 못해 청량함까지 느껴졌다. 이유가 있었다. 건물 한가운데가 시원하게 뚫려있는 구조였다. 없던 호기심이 갑자기 발동했다. 예정에 없었던 건물 안 산책을 시작했다. 건물 이름처럼, 우주산업 또는 화성 탐사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감도 한몫을 했다.
놀랍게도, 입구 안쪽에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유리창 안에는 오래된 수술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과학 시간에나 볼법한 실험 도구들도 있었다. 도구에 묻어 있는 손때가 건물의 역사를 대변하는듯했다. 수수께끼는 싱겁게 풀렸다. 이곳은 의료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궁금한 게 해소됐으니, 더 이상 건물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건물을 다시 찾은 건, 3시간이 채 못돼서였다.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첫 방문 시, 건물 지하에 식당들이 있다는 미리 알아둔 덕분이었다.
문을 연 식당이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그나마 열려있는 곳들도 대부분 닫을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새로운 식당을 찾아갈 기운도 의욕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눈길이 머무는 곳이 하나 있었다. 동양인 할머니 혼자서 바쁘게 일하시는 식당이었다. 대기 중인 손님도 꽤 보였다.
"뭐 먹을까?"
"글쎄, 어떤 게 맛있을까?"
사진만 보면서 뭘 먹을지 가늠하고 있는데, 주방에 있던 할머니가 휙 뒤돌아섰다. 금속테 안경 너머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이기 시작했다.
"한국 분이세요?"
"아! 네! 한국에서 왔어요."
처음 보는 식당인데도 끌린 이유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 번째다. 토론토에 와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도.
우리와 달리 할머니는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기뻐하시는 내색조차 안 하셨다. 왜 그러신가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식당 문 닫기 직전에 찾아온 탓이었다. 주문 가능한 메뉴가 몇 개 안된다고 걱정부터 하셨다.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남아 있는 음식을 주섬주섬 곁들여 주신다. 주문하지도 않은 음식이다.
아내 앞에는 닭고기가, 내 앞에는 양고기가 곁들여진 식사가 놓였다. 선택할 것도 없었다. 가능한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생애 두 번째 맞이하는 양고기였다. 오래전 아내와 함께 생애 처음으로 먹어 본 양고기는 딱 하나만 각인시켰다. 참을 수 없는 누린내.
"양고기 어때? 먹을만해?"
"응. 맛있어."
아내는 닭고기를 오물오물 맛있게 씹으면서, 나를 걱정했다. 내 양고기를 한 번 쳐다보고, 내가 양고기를 먹는 걸 한참 동안 관찰했다.
"누린내 안 나?"
"응. 요리를 잘 하셔서 그런지 누린내가 하나도 안 나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아내의 포크가 내 접시 위로 쑥 밀고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양고기를 베어 물더니, 최대한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아내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거짓말!"
아내의 거친 투정에 나는 굳이 항변하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열심히 입을 오물거렸다. 나는 지금 양고기를 먹고 있는 게 아니다. 입 안에서 나는 냄새는 누린내가 아니다. 그렇게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식사를 간신히 마쳤다.
불현듯, 내가 있는 이곳이 지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나는, 화성(Mars)에서 양고기를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위장은 점점 무중력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