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시티패스는 애초부터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여행자를 맞이할 준비가 된 도시라면, 도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못해도 이벤트 하나 정도는 준비되어 있다. 그런 프로그램이 노골적으로 지갑을 노려도, 여행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 막상 마주하게 되면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기회를 혹시라도 모르고 지나치더라도,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여행자는 거의 없다. 열에 아홉은 그 기회를 놓친 것을 못내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게 내가 도시를 방문하기 전, 제일 먼저 그 도시의 관광청부터 들어가 보는 이유다.
좀 더 냉정해진다면, 이런 기회가 득인지 실인지 판단하는 것은 훨씬 쉬워진다. 대표적인 관명명소 중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스쳐 지나가는 게 세상이다. 오히려 그런 명소를 일부러 방문했다가 소중한 여행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다른 도시처럼 토론토에도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토론토 시티패스라는 것이다. 장단점을 논하기 전에, 토론토 시티패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게 순서일 듯싶다.
대부분의 시티패스가 그러하듯이, 토론토 시티 패스도 관광 명소에 대한 프리패스 성격을 갖고 있다. 패스를 구입하면, 5개 명소를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CN 타워, 카사 로마,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리플리의 캐나다 수족관, 토론토 동물원 또는 온타리오 과학 센터 (둘 중에 택 1)가 바로 그곳이다. 패스의 가격은 $100 가까이 된다. 연중 할인하는 때가 많아서, 이 가격을 주고 사는 게 아까울 때가 많다. (우리가 방문할 때는 40% 할인행사 중이었다). 한 번 구입 시, 9일 동안 사용할 수 있다.
가성비만 따진다면, 최소 3곳 이상을 방문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할인폭이 크다고 덥석 티켓부터 구입할 수는 없었다. 그전에 따져보아야 할 게 있었다. 일단 구입하게 되면, 본전 생각이 안 날 리가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명소를 모두 둘러볼 가능성이 높았다. 5군데 장소가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먼저 살펴봐야 했다. 최소한 그중에 몇 곳이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알아봐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패스가 지닌 장점이자, 단점이다. 명소를 자유롭게 볼 권리가 생기지만, 없던 욕심을 부리게 만든다. 욕심은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르치기도 한다. 동선과 일정도 엉망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가고 싶지 않았던 곳도 억지로 나를 떠밀게 된다.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보게 만든다. 덕분에 뜻밖의 발견을 할 수도 있지만, 진짜 가고 싶었던 곳을 놓치게 되고,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도 포기하게 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결국에는 시티패스를 소진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여행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반드시 나의 명소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시티패스에서 지정하는 명소가 꼭 가봐야 할 명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시티패스를 사는 게 더 이득이지 않을까? 최소한 세 곳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정이 좀 빠듯해지긴 하지만."
“우리가 원래 가보고 싶었던 곳은 그중에 2개뿐이었잖아.”
“그렇긴 하지. 카사 로마랑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뿐이었으니까.”
“원래 계획대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CN 타워, 수족관, 동물원, 과학 센터 네 군데 모두 우리 취향이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취향은 아니지만, 막상 가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혹시 알아? 뜻밖의 소득이 있을 수도 있잖아.”
“시티패스 사고 나서, 욕심 안 낼 자신 있어? 본전 생각나서 다섯 군데 다 가자고 할 것 같은데?”
“하긴, 그럴 것 같기도 해. 나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시티패스는 깨끗이 단념하고,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이나 가자.”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시티패스의 존재를 알기 전으로 회귀해야 했다. 토론토에서 궁금했던 곳은 카사 로마와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두 곳뿐이었다. 그 밖의 장소는 모두 관심 밖이었다. 갈등의 시작은 시티패스를 알고 나서부터였다.
곰곰이 하나둘씩 따져보니 아내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둘 다 높은 곳에 제 발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연히 올라갔는데, 보기 좋더라.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도심의 타워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수족관, 동물원도 좋아하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에 동물들을 가둬 두는 걸 오히려 끔찍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동물들이 보고 싶으면, 인간들이 동물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울타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도 못할 짓이고, 그 동물들을 보러 가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결국 우리는 토론토 시티패스를 사지 않기로 했다. 원래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여행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토론토 시티패스는 애초부터 우리 몫이 아니었던 거다.